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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크롬 Aug 06. 2020

'야마'에 대한 시각

음악부터 과학까지

  1. 최근 한 달간 A&R 관련된 활동을 직접 하면서 음악을 듣는 관점에 새로운 무언가가 생겼다. 물론 나에게는 음악을 듣는 나만의 기준이 분명 존재하지만, 주관적인 시선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무의식적으로 노력해온 감이 없지 않았다. 더불어 차트에 찍힌 제3자들이 만들어낸 가치, 혹은 전문가의 호평에 종종 의존하기도 했다. 그것이 당연히 음악 산업 종사자로서 갖추어야 할 인사이트라고 생각했다.





  2. 그렇지만 데모를 들어야 하는 순간 우리에게는 새로운 눈이 하나 더 필요하다. 살점이 없고 뼈대를 보고서 무엇이 만들어질지 예측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제한된 정보로 싹수가 노란지 파란지 빨간지 걸러내야 한다. 그래서 A&R의 시선을 갖추는 일은 어렵다.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 가슴을 툭 자극하는 무엇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소위 '야마'라고 불리는 무엇이다.





  3. 이러한 판단 기준을 직관적이고 비과학적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그렇다. 이처럼 도통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을 요구하기에, 나는 A&R이 그저 음악을 두루 듣는 것만으로는 이를 갖추기 어려울 것이라고 느꼈다. 혹시 어렸을 때 음악을 듣다가 "쉣! 그렇지!"라고 외쳤다던가 멜로디도 아닌 사소한 장치에 꽂혀서 수백 번 다시 재생해 들었던 경험이 있는가? 바로 그것이 '야마'가 당신의 직관을 정확히 조준한 것이다. 언어로 환원해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바로 '야마'이다. 그 느낌을 잘 기억하고 좋은 음악을 발굴하는 것이 바로 A&R로서 갖추어야 할 가장 최고의 자질이라고 최근 경험을 통해 나는 느꼈다.





  4. 그런데 여기서 질문 하나 더. '야마'는 음악의 영역에 한정되어 있는가? 나는 최근 그 '야마'가 장르와 상관없이 존재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수학이나 공학, 철학 따위에도 '야마'가 되는 순간이 있을까? 나는 무조건 있다고 단언한다. 바로 그것이 과학자들의 영감이다. 빛의 최고 속도가 고정되고 질량과 에너지가 교환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낸 아인슈타인, 경험주의와 합리주의를 섞어서 철학사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룩한 칸트, 해석학이 아니라 대칭과 군을 이용하여 5차 방정식 이상의 근의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낸 갈루아, 메타수학 명제를 소수의 곱으로 전환시키는 아이디어로 불완전성 정리를 완성한 괴델, 언어를 단순히 인간의 약속된 체계가 아니라 몸에 내장된 모듈로 본 노엄 촘스키와 스티븐 핑커 등등 일반인으로서 가질 수 없는 '야마'로 지성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천재들의 사고, 그리고 그 안에 든 '야마'를 값싸게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책밖에 없으니까.





  5. 최근 <스켑틱>지에서는 과학자의 비과학적인 가설 성립 과정에 대해 다루었다. 과학적 발견의 시작은 치밀하게 계산된 루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연구를 통해 훈련된 직관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 "이거 될 것 같은데?"에서 출발한 것들이 우연치 않게 좋은 연구로 이어지고, 우리는 이후 그것들을 논문이라는 정돈된 형태로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과학 연구의 모든 프로세스는 과학적일 것이라는 일종의 오해를 받고 있다. 아직까지도 가설을 '과학적으로' 세우는 방법은 없다. 벤젠의 6각형 구조를 발견한 케룰레도 꿈에서 이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고, DNA 이중나선을 발견한 크릭도 우연이 과학에서 중요한 과정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최근 데이터와 머신러닝을 이용한 가설 세우기가 주목받고 있는데, 이런 접근 방법이 인간의 직관과 경쟁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6. 이렇게 과학이라는 씬에서도 '야마'의 힘이 강력하다는 것, 여전히 인간의 감각이나 행동을 완벽히 정량적인 무언가로 환원해낼 수 없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물론 나는 여기서 종교와 신비주의로 나아가지는 않겠다. 행복을 숫자로 분석할 수 없다 해서 행복이 불가해한 신적 존재로서 다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야마'는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하는 특별한 가치로 간주하면 그만이다. 만약 당신이 '야마'를 충분히 직관하고 있으면 잘 즐기면 된다. 만약 '야마'가 부족한 것 같다면, 당신만의 야마를 찾아 나서면 된다. 다행스럽게 '야마'는 음악과 예술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야마'는 수학, 과학, 철학, 역사, 경제, 문학, 법, 기술 등 인간이 접근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건축공학자들이 콘크리트와 철근의 열팽창 계수가 같은 사실을 발견했을 때 느꼈던 희열감과 같은, 그 무언가를 찾아 나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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