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익 <로버트 노직, 무정부·국가·유토피아> 리뷰
1. 분배와 정의를 이야기할 때 가장 대표적인 현대 정치철학자로 <정의론>의 존 롤스를 꼽지만, 그에 대한 반대 입장을 들어보고 싶다면 로버트 노직을 빼놓을 수 없다. 만약 본인이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적 입장이라면 노직의 생각을 반드시 읽어보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먼저 노직은 개인의 재능과 지능을 사회의 자산으로 보는 롤스의 전제를 비판하고, 이러한 설명은 개인의 책임을 사회 전체에 전가해버리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대표작 <무정부·국가·유토피아>에서는 이러한 비판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최소국가(야경국가라 불리는)가 가능한지, 그리고 소유권에 대한 정의가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지 설명한다. 내가 읽은 <로버트 노직, 무정부· ...>는 위 고전의 요약서로, 주요 키워드를 통해 교양 레벨로 간략하게 정리한 내용을 다룬다.
2. 먼저 <무정부...>가 어떤 이유로 정치철학계 내의 관심을 끌었는지 살펴보자. 노직은 기존 존 로크의 사상으로 알려진, 개인 권리와 소유권을 강조하는 입장을 더욱 강화시켰다. '소유권리론'이라고 불리는 노직의 이론은 쉽게 말해 존 로크의 철학, 이론적 토대를 업그레이드한 버전이다. 두 번째로 노직은 논리와 언어 자체에 초점을 맞춘 학문인 분석철학을 일상 문제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전통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현실 문제에 엄격하고 세련된 방법론을 도입한 것이다. 세 번째로 복지 국가에 대해 반박했다. 노직은 개인에게는 절대 침해할 수 없는 권리가 존재하고, 복지 국가가 재산권을 필연적으로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네 번째로 그는 정치적 자유주의 이념의 내실을 다졌다. 당시 대륙의 사회주의 이념을 뒷받침하는 이론이 꾸준히 제시되어 왔고, 반대로 서구의 자유주의는 이론적으로 빈약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노직은 개인주의의 철학적 토대를 다시 견고히 하고, 자유주의 세계를 대표하는 미국의 정치적 이념을 옹호했다.
3. 그렇다면 노직이 바라는 '유토피아'의 정부는 어떤 형태일까? 어떻게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도 무정부상태가 아닌 국가가 성립할 수 있을까? 노직이 말하는 '최소국가'는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탄생한다. 먼저 권리를 가진 개인들이 자연 상태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각 개인들은 자연 상태에서 겪을 수 있는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발적으로 협회를 만들게 된다. 이러한 협회들은 각 지역 별로 나뉘게 된다. 이를 '극소국가'라고 한다. 극소국가에서는 협회에 참여하고 비용을 부담하는 자만이 보호받는다. 물론 협회에서도 누가 서비스에 봉사하고 면제받을 것인지에 대한 마찰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회원 간 분쟁을 처리할 수 있는 분명한 절차를 마련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특정 협회는 합병과 연합을 통해 특정 지역의 지배적 보호 대행사로 성장한다. 이후 극소국가는 나머지 독립적인 영역에 있던 이들에게 보상(협회에 들어가면 보복 행위를 할 수 있는 자연권을 넘기고 안전 서비스를 보상으로 받음)을 하고, 흡수를 진행하여 이렇게 노직이 말하는 최소국가가 완성된다. 최소국가는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야경국가를 의미하며, 범죄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거나 계약을 이행시키는 기능만을 수행한다. 노직에 따르면 이 이상을 넘어서는 기능을 하는 국가는 정당화될 수 없다.
4. 다음으로 소유에 관한 노직의 주장을 살펴보자. 먼저 로크가 주장한 사적 소유의 두 가지 조건을 알아야 한다. 하나는 대상물에 적절한 노동을 부가하면 소유가 발생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타인들이 소유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로크적 단서'라고 부른다. 노직은 로크적 단서를 기반으로 원초적 획득을 통해 타인의 입장이 악화되지만 않는다면 획득이 정당화된다고 보았다. 한편 앞서 언급한 노직의 소유권리론은 획득의 원리, 이전의 원리, 교정의 원리 세 개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소유되지 않은 것들을 최초로 습득하는 것에 대한 원리이다. 둘째는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취득할 수 있는 교환, 증여에 관한 원리이고, 그리고 셋째는 교환에 있어 불의와 강제에 의한 부정을 어떻게 교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리이다. 노직에 따르면 이 조건들에 합치해야 우리는 소유권을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
5. 노직의 소유권리론의 핵심 중 하나는 역사적 특징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즉, 앞서 말한 세 가지 원리는 모두 현재 시간 기준이 아닌 역사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쉽게 말해 정의의 상태를 평가할 때 소유와 분배가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그 몫이 받아 마땅한지가 역사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노직의 소유권리론은 '정형적'인 분배와 거리를 둔다. 하나 더 예를 들어 보자. 아이유가 콘서트를 열었는데 인기를 고려해서 원래 티켓값보다 천 원씩 돈을 더 걷었다고 하자. 관람객이 만 명이어서 아이유는 천만 원을 더 벌게 됐다. 사람들이 재화의 이전을 통해 자발적으로 정형화된 분배 상태를 붕괴시킨 것이다! 만약 정형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금지한다면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정형을 맞추기 위한 교정을 시도한다 해도, 이것 또한 자유 침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반면 노직의 소유권리론은 분배의 '비정형' 상태와 자발적인 이전의 정당성을 인정한다.
6. 이제 노직이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자본주의를 강압적인 제도로 보지 않은 것이 이해가 되는가? 어쨌든 나의 선택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행동한 것이라면, 그것은 자발적인 것이고 정당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노직에게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최소 수혜자의 이익에 초점을 두는 롤스와는 딴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로버트 노직, 무정부...> 책 자체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일단 쉽게 읽히지만, 로크와 롤스에 대한 사전 지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요약서임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긁적거릴 수 있다. 따라서 공리주의, <통치론>, <정의론>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고 가면 독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원서를 읽는 건 잘 모르겠다. 번역이 구리다는 말이 있어서 나 또한 이 요약서를 읽은 것으로 만족할 예정이다. 그만큼 정리가 잘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