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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크롬 Nov 19. 2020

젠장, 태어나버렸군.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리뷰


  1. 개인적으로 특정 직업인의 에세이를 읽는 것이 전업 작가들의 것보다 더 흥미롭다. 직업 특유의 개념과 논리, 세계관 등이 고스란히 글에 묻어 나오기 때문이다. <검사전>, <판사유감>에 읽는 재미가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이들은 덜 문학적으로 보일지언정 삶의 현장에서 비롯된 스토리의 생생함은 전혀 뒤지지 않는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의 테마는 한 학자의 통찰이다. 저자인 김영민 교수가 본인의 전공인 정치, 공동체의 개념으로 바라본 세상을 이야기한다.






  2. 책의 가장 큰 매력을 꼽는다면, 현직 교수님이 쓴 글이 맞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유쾌함과 팩트 폭격이다. 신랑 신부는 물론 하객들이 당황할 정도로 현실적인 조언을 때려 박는 주례사, 친척 간 오지랖이 패시브인 추석 풍토에 대한 철학적인 디스를 읽고 나면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소심한 듯 귀여운 듯 근엄함을 한껏 내려놓은 문체까지. 동류의 다른 베스트셀러처럼 세상을 향한 따뜻함과 부조리한 일상에 대한 기록이 두드러지는 건 아니지만, 냉소와 측은지심 사이 어디쯤 공존하는 저자 특유의 포지셔닝은 진부한 에세이들 사이에서 분명 또렷하게 빛난다(여담으로 교수님의 MBTI가 느껴진다).






  3. 소싯적 영화평론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꾸준히 평론계에서 활약해온 사실에도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다. 보통 에세이집에 특정 작품에 대한 평론이 함께 첨부되어 있으면, 작품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은 이상 넘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교수님이 영화를 해석하는 방식이 과연 어떨지 호기심이 들었고, 확실히 철학의 정제된 언어를 사용해서 그런지 읽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양들의 침묵>은 꼭 보고 싶어졌다.






  4. 제목인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의미하는 저자의 표현이다. 때론 죽음에 대한 감각이 역설적으로 삶을 지탱해 준다고 한다. 무로 증발하는 미래를 자각하는 순간, 오싹함을 느낀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범인은 허무주의자로 남을 확률이 크지만 철학자의 태도를 가진 사람은 오히려 삶의 강력한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 왜? 내가 죽음의 경계에 놓여 있다면, 여생에 두려워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이는 자잘한 상념과 현실의 문제로부터의 해방이며, 다소 비건강한 태도를 내포한 욜로와는 또 다르다. 가끔은 세속과 젊음의 평화로움 속에 숨어 있던 죽음을 똑바로 들여다보는 것도 좋다.






그리하여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다. 생활에서는 멀어지지만 어쩌면 생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정된 시간. 삶으로부터 상처받을 때 그 시간을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 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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