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부분의 기획 관련 서적들은 Why-What-How(- If, so ...)를 정돈된 기획의 형식으로 내놓는다. 기획 경험이 적거나 당장 말하고자 하는 바가 뒤죽박죽인 경우 이 프로세스는 굉장히 유효하다. 정보에 논리와 흐름만 부여해 줘도 청자는 적어도 발표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내 아이디어를 저렇게 기계적으로 나열하면 끝인가? 프로세스 자체는 사실 익숙해지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스킬' 아닌가? 좋은 기획, 고수와 하수를 가르는 지점은 어디에 있는가? <기획은 2형식이다>는 이처럼 형식 이면에 좋은 내용물을 뽑아낼 수 있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2. 책은 3형식이나 PPT 작성 훨씬 이전의 "뭘 하지?" 단계로 돌아간다. 여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P코드(problem)와 S코드(solution)라는 안경이다. 저자에 따르면 문제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규정하는 것이다. 가령 한겨울 미군으로부터 부산 UN군 묘지에 푸른 잔디를 깔아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정주영 회장은, 문제가 '잔디'가 아니라 '푸름'으로 규정하고 잔디 대신 보리밭을 옮겨 심어 미션을 해결했다. 이처럼 현상과 본질을 구분하고 우리가 능동적으로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 문제가 규정되면 해결책은 저절로 따라나온다. 나아가 문제/해결의 시간 투자 비율을 3:1의 비중으로 간주하라고 저자는 덧붙인다.
3. 이 외에도 문제를 규정하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다. 구매 경험을 총 6단계의 조각(구매, 배달, 사용, 보충, 유지 보수, 폐기 처분)으로 나누는 MECE의 방식으로 문제를 찾아낼 수도 있다. 그리고 문제가 너무 많다면 볼링핀처럼 구조화시켜 나머지를 연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핵심 문제를 찾아낼 수도 있다. 나아가 찾아낸 문제를 2형식으로 심플하게 기술할 수 있어야 한다. 햇반의 '엄마가 해주신 밥' 광고는 "문제는 주부의 죄책감이다"라는 심플한 문제 규정으로 설명된다. 반면 "문제는 주부들이 밥을 만들기 힘들어서 인스턴트 밥을 만들었는데~ 가족들은 맛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인스턴트도 맛있는 밥이다를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처럼 중언부언하는 경우는 문제가 제대로 규정되지 못한 케이스다.
4. 문제를 규정하면 해결 방법이 나온다. 저자는 문제 규정이 문제점을 찾기 위해 파고드는 과정이었다면 해결책 만들기는 공감, 낯섦, 비유를 통해 뛰어오르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요컨대 '원숭이가 백두산이 되는 과정'이다. 뛰어오른 아이디어와 콘셉트는 은유로 표현된다. "히트텍은 제2의 피부다"와 같은 카피가 그 예다. 그렇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아이디어는 훔쳐 오는 것이다. 흔히 쓰이는 레퍼런스란 말과 같다. 하지만 티가 나게 훔치면 베끼기가 되므로 카테고리를 넘나들며 멀리서 개념을 가져오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인문학, 섬세한 관찰, 개방적인 회의를 잘 훔치기 위한 습관/조건으로 꼽는다.
5. 이렇게 책은 P-S 코드를 먼저 주구장창 설명하고 남은 페이지에서 우리에게 익숙하던 Why-What-How, 그리고 각종 프레젠테이션 스킬 따위를 제공한다. 다시 말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프로세스라는 '형식' 이전의 P-S라는 '태도'이다. 형식만으로는 깔끔한 기획이 나오지 않는다. P-S 코드 없이는 군더더기가 많아지고 장황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P-S 코드는 기획을 쉽고 명쾌하게 만들어 준다. 한편 저자는 데이터와 정보 자체에 매몰되는 기획들을 지적한다. 우리의 통찰이 데이터를 이용해야 하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 지나치게 심각하고 진지한 우리나라 기획자들에 대한 염려를 덧붙인다. 우리는 과다한 정보와 경직된 마음 둘 다 어느 정도 덜어낼 필요가 있다. 저자의 말처럼 '기획'은 '계획'과는 다르고, 알고 보면 무척 재미있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