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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크롬 Dec 20. 2020

심리학? 이건 못 참지 ㅋㅋ

가와이 하야오 <카를 융 인간의 이해> 리뷰

  1. 2020년을 회고한다면 MBTI 열풍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MBTI는 취미, 직업 등과 함께 자신을 소개하는 강력한 요소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그 과학적 기반 및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검사의 신뢰도와는 별개로 말이다. 어쨌든 MBTI는 융 심리학의 성격유형론에서 유래한 심리 검사이다. 즉 네임드 심리학자의 설명을 곁들인, 나름의 이론적 기반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융 심리학은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동시대 학자 프로이트의 설명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카를 융, 인간의 이해>는 융 심리학 내의 주요 개념에 대한 간략한 소개서이다.





  2. 책은 먼저 외향/내향, 직관/감각, 사고/감정 이 세 가지 축을 바탕으로 한 개인의 타고난 성격 유형 8가지를 소개한다. 앞서 말한 MBTI와 관련이 있는 내용이다. 가령 '외향적 감각유형'은 객관적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리얼리스트, 현실의 향유자이다. '내향적 사고유형'의 경우 지식보다 견해를 내놓는다. 융은 이런 유형의 대표 위인으로 칸트를 꼽기도 했다. 한편으로 우리의 성격은 대체로 이렇게 양극화된 모습이 아니다. 더불어 개인의 행동이 의식적인 표현인지 무의식적인 표현지를 구분하지 못하면 성격 유형을 결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보조기능의 활성화뿐만 아니라 열등기능 또한 발전시켜 나가면서 개인의 인격은 충분히 업그레이드 가능하다. 융은 이를 '개성화 과정'이라고 불렀다.





  3. 융은 '무의식 안에 존재하고 어떤 감정에 의해 연결된 심적 내용의 집합체'를 콤플렉스(Complex)라고 불렀다. 가령 단어 연상 실험에서는 '흰색'부터 '검은색'까지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하게 되는데, 만약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흰색-흰 천-죽은 사람의 얼굴-장례식-검은색'과 같이 특정 관념에 사로잡혀 먼 길을 돌아오게 된다. 또한 콤플렉스는 알려진 것처럼 열등감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봉사정신이 곁들여진 우월감 콤플렉스의 경우 열등감 콤플렉스와 동시에 나타나기도 한다. 때론 콤플렉스를 외부에 투사해서 회피하려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내부의 콤플렉스를 인식하고 '투사의 되돌림'을 경험하면서 내면이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4. 융은 무의식을 개인 무의식, 집단 무의식의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전자는 의식이 그것을 회피한 내용, 그리고 의식에 도달할 정도의 강도는 없지만 마음속에 남겨진 감각적인 흔적이며 후자는 인류 보편 단위로 발견되는 마음의 기초이다. 집단 무의식에는 시대와 문화 공통으로 발견되는 원형(Archetype)이 있는데, 원형으로부터 의식 안에 떠오른 심상을 원시심상이라고 해서 둘을 요소와 효과로서 구분하기도 한다. 때론 이것을 특정 심상이 계속 유전된다기보다는 표상 가능성이라 파악한다. 가령 태양을 보았을 때 신으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인간에게 있다.





  5. 원형의 종류에는 그림자, 페르소나(Persona), 아니마(Anima)/아니무스(Animus), 자기(self)가 있다. 그림자는 개인이 의식하지 못해 받아들이기 힘든 심적 내용이다. 말 그대로 마음의 부정적이고 어두운 부분이다. 그림자가 자아의 제어를 벗어나면 이중인격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융은 외부 세계에 대한 태도를 페르소나, 반대로 내부 세계에 대한 태도를 아니마(아니무스)라고 불렀다. 전자는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이고 후자는 각자 성에 반대되는 기능이며, 즉 남성에게는 이상적 여성상으로, 여성에게는 이상적 남성상으로 나타난다. 가령 여성은 아니무스를 통해 계획적이고 건설적인 힘을 이끌어내기도 하며, 반대로 아이에게 이를 투사해서 이상적인 삶(ex. 왕자, 위대한 음악가)을 강요하기도 한다.





  6. 자기는 마음 전체의 중심이다. 이는 자아(ego)와 구분되며 큰 원이 작은 원을 포함하는 것처럼 자기가 자아를 포함한다. 쉽게 말해 자아는 내가 아는 나이고, 자기는 내면 깊숙이 숨겨진 나이다. 자아가 자기를 받아들이며 높은 차원의 전체성을 지향하려는 과정을 융은 자기실현 과정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자기의 존재를 아예 잃어버린 사람은 어떻게 될까? 의식체계를 발전시키고 무의식의 비합리와 열등함을 배제한 인간은 강한 자아를 바탕으로 사회적인 성공을 누릴 것이다. 하지만 문득 삶에서 의미를 찾기 어렵다고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한편 자기실현 문제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공부에만 매달리던 사람이 뜻밖에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반대로 내부의 동기에만 집중한 채 페르소나를 파괴할 가능성도 있다. 융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아가 성장하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생각했다.





  7. 나아가 무의식의 개념들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꿈이다. 꿈은 '의식에 대응하는 무의식의 상태가 어떠한 심상으로 표현하는 자화상'이다. 그리고 마음 내적인 활동에서 '심상'이 비롯되는데, 이것들은 시공간 질서를 파괴하고 여러 속성과 섞여 나타나기 때문에(가령 직선, 개, 산이 아버지로 구체화됨) 주의 깊게 파악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난해함, 불명확함을 떨쳐내고 세련된 모습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또한 꿈은 콤플렉스에 작용해서 심상을 만들어낸다. 즉 융의 방법에 따르면, 꿈의 표현을 살피고 그 표현에 대응되는 콤플렉스에 대처할 방법을 찾음으로써 현재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8. 확실히 이러한 내용과 체계 자체는 흥미롭긴 하지만, 분석심리학의 그 기반에 있어서 합리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건 사실이다. 앞서 말했듯 성격이란 것은 속마음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에 측정이 어려운 것도 있고, 꿈 해석의 경우 설득력은 더욱더 미미하다. 오히려 유형보다 수치에 기반을 둔 Big 5 검사가 나를 더 잘 설명해 주기도 하고, 꿈은 해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기억과 상상 기능을 맡은 해마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정보처리 과정에 가깝다. 심지어 집단 무의식의 표상 가능성 또한 생물학 측면에서 더 깔끔하게 설명될 것 같다. 종교를 갖는 초월적인 동기조차 집단 선택, 부산물, 밈 이론 등으로 설명하려 노력하고 있으니까(<스켑틱> 23호 참조). 물론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 자세를 묻는, 융 심리학의 태도적인 면은 실용적이라고 생각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본주의 미소를 띤 우리에게도 가끔은 진짜 자기에 대한 질문도 필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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