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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크롬 Dec 22. 2020

과학? 그게 돈이 되겠어?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리뷰

  1. 과학 분야를 공부하고 업으로 삼는 사람은 많지만 과학이 도대체 뭔지에 대해 명료한 대답을 내놓는 사람은 드물다. 미디어와 SF 콘텐츠가 표현하는 것처럼 과학은 자연의 언어를 연구하는 것인가? 나아가 신적인 규칙을 밝혀내는 것? 아니면 기술을 개발하여 인간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 혹은 푹신한 침대를 발명하는 것? 여러 심상이 떠오르긴 하지만 근본적인 대답을 도출하긴 어렵다. 여기서는 과학의 기능과 효용보다는 메타적인 설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의 방법론 자체를 다루는 과학철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는 과학을 인간과 비인간의 네트워크로 간주하고, 무엇보다도 여기서 발생한 '기술'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한다.



  2. 책은 "과학기술은 비인간을 길들여서 세상에 내놓는 인간의 활동이며, 과학자들은 비인간과 인간 사이에 연결망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네트워크로서의 과학기술은 일방적으로 비인간을 컨트롤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비인간에게 영향을 받기도 하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다. 이러한 이해는 과학기술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준다. 첫 번째로는 과학기술의 지위에 대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다른 직업과 달리 비인간을 연구하고 발굴해내는 1차 생산자이다. 이로 인해 지식적인 권력과 정치적인 이슈가 발생한다. 두 번째는 과학자들이 비인간을 마음대로 다루기 어렵다는 사실이 있다. 과학자는 가설과 모델을 만들어서 연구를 하는데, 여기에 사회적/문화적인 가정은 물론 과학자 공동체의 철학적 관점이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실험실과 실제 자연 사이의 간극이 있다. 실험은 어디까지나 제한된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수많은 변수를 포함한 자연을 모두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또한 책은 과학과 기술 사이의 깊은 관련성을 강조한다. 과학은 기술을 낳고, 기술은 새로운 과학의 진보를 가져온다. 가령 증기기관 기술은 열역학의 발전을 이끌었다. 그리고 천체물리학의 경우 고도의 기술로 만들어진 망원경으로부터 지식이 만들어진다. 한편 책은 표준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표준이 정해져야 기술 발전과 교류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잘 닦인 표준은 고속도로와 같다. 나아가 책은 우리가 고정관념으로 알고 있던 과학자들에 대한 이미지를 반박한다. 현대 사회의 훌륭한 과학자란 방구석 연구만 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아니라 능수능란한 사업가에 가깝다. 이들은 정치인과 기업인들과 소통하고, 동맹을 맺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과학자들이 원했던 자유로운 교류와 군인들이 요구한 엄격한 행정 사이의 균형을 찾아낸 오펜하이머가 그 예다.



  4. 앞선 내용, 즉 과학과 기술의 복잡다단한 성격은 구체적인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쉽다. 먼저 과학 실험을 보자. 실험은 정말 매뉴얼대로 깔끔하게 이루어지는가? 책은 실험에 많은 암묵지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좋은 실험을 위해서는 기기에 대한 이해, 측정에 대한 노하우, 미세한 변화 감지 등 부차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저자는 이를 '숙련된 요리사가 되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논문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의 접촉을 통해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미국의 실험실을 우리나라의 실험실에 똑같이 구현하는 건 어렵다.



  5. 때론 과학자들끼리 몸담은 분야에 따라 같은 현상에 다른 의견을 주장하기도 한다. 가령 생물학적동등성 시험(생동성)의 경우, 약사들은 생체 내의 복잡한 과정도 결국 물리화학적 과정이기 때문에 생동성 시험 대부분이 시험관을 이용하는 용출시험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의사, 임상 약리학자들은 생체반응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생동성 시험 후 생체반응을 유심히 살피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각자가 속한 지식 네트워크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비슷한 예로 한 사람의 질병 보유 여부는 측정하는 집단(통계학자냐 생리학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6. 표준에 대한 논란도 빼놓을 수 없다. '1미터'는 어디에서 유래했는가? 이는 신이 정해준 개념이 아니라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력과 권위가 모여서 만들어졌다. 한 마디로 부분적인 객관성을 갖지만, 절대적이진 않는다는 뜻이다. 가령 제주도 해안선의 길이 또한 측정 기준에 따라 오락가락했던 역사가 있다. 즉, 사회적 합의가 달라지면 해안선의 길이도 달라진다. 한발 더 나아가 물이 100도에서 끓는다는 사실은 어떤가. 처음 이 명제가 만들어진 이후로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고, 장하석 교수는 이를 '신화'라고 불렀다. 한편 여기서 사화과학과 자연과학의 차이가 드러난다. 전자는 근본 개념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하지만, 후자는 합의 후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은 오히려 빠르게 발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7. 그렇다면 과학은 취약한 믿음체계에 불과한가? 아니다. 책은 오히려 과학이 불완전한 토대 위에서 잘 작동한다고 말한다. 초월적인 자연의 법칙이나 근본에 대한 굳은 합의가 없어도 과학은 발전한다. 과학은 자연에 대한 근사(approximation) 과정이다. 과학자들은 특정 조건을 기준으로 한 '법칙'을 얻어내고, 즉 모델을 만들어내고 네트워크에 추가함으로써 과학을 발전시킨다. 토머스 쿤의 이론처럼 때론 두 패러다임이 충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 간의 논쟁을 통해 합의된 하나의 체제가 만들어지고, 과학은 '보편성'을 얻는다. 이러한 측면에서 과학은 발견보다는 발명이며, 이 과정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이다.



  8. 우리나라는 자체적인 과학의 발전 과정을 겪지 않고 서양으로부터 '수입한' 과학을 배웠기에, 과학에 대해 다소 신화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절대성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버리고 합리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물론 과학의 불완전성에만 주목하고 '안아키'적인 믿음을 갖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과학이 가진 특수한 발전 동력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편 우리가 과학철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이 단순히 신의 규칙이 아니라 보편을 향한 인간의 끊임없는 반성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그 위대함과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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