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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Feb 24. 2018

밤길은 하나

스물일곱, 열넷

새벽 1시가 지났다. 8시간 넘게 지속된 두통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스트레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를 간악한 존재는 감히 달랠 수조차 없다. 언제면 멎을까. 언젠간 멎겠지. 의미 없는 바람을 되뇔 틈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한숨을 쉬어도, 창을 열어 밤바람을 쐬어도 두통은 가시질 않는다. 힘없는 흰 연기가 밤바람을 타고 눈앞에서 두어 번 두둥실, 떠나갔다. 깊게 숨을 들이쉰다. 두통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다.


- 안 자요?


나의 등에 대고 소녀가 묻는다. 열넷의 소녀는 말간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소녀가 누군지 알고 있다. 소녀도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 하지만 서로는 서로를 모른다. 그러기로 약속했다. 우리는 서로를 모르는 것이라고.


- 안 자요?


하릴없이 묻는다. 소녀는 묻고 싶지 않다. 하지만 물어야 한다. 그것은 소녀가 지니고 있는 일종의 사명이다. 나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되돌아보지 않는다. 소녀의 사명이 그것이라면 나의 사명은 이것이다. 아니, 나의 경우 사명이라기보다는 금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 언니, 이제 자야 해요.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를 이 두통은 언제면 멎을까.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릎을 끌어모으고 얼굴을 묻는다. 울고 싶었다. 하지만 눈물이 나지 않는다. 열넷의 소녀가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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