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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추억 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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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Apr 13. 2018

행복한 꿈

그는 무척 바쁘다는 듯이 움직였다.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는 날이었다. 나는 그저 손을 나란히 잡고 지금 부는 이 부드러운 봄바람을 만끽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손을 잡고 있는 그의 손에는 점점 알 수 없는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리는 점점 지쳐왔고, 내 마음도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어때?"

"……."

"난 괜찮은 것 같은데."

"……."

"이걸로 주세요."


탈의실 앞 전신 거울 속에 비친 나는 흰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어제의 나와는 달라. 어제의 나는 흰옷을 입고 그 누구보다도 밝게 웃고 있었지만, 오늘의 나는……. 오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나는 그 기분을 평생 모르리라, 모르게 하리라 다짐했다.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상처 주고……. 나는 그러한 행위들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에 걸려온 그의 휴대전화 벨 소리에 깨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 잠에서 깨지 않았다면, 그토록 아름다웠던 어제까지의 환상도 혹 깨지지 않았을까.


손을 잡고서 나를 바라보는 그 표정 속, 나에 대한 감정은 과연 얼마나 담겨있을까. 작지만 투박한 손. 분명 따뜻했던 손인데 어째서인지 점점 더워진다. 숨을 조여와 답답하다.


"어디로 갈까?"

"당신……."

"나는 뭘 좀 마시고 싶은데."

"……날 사랑해?"

"……."


여전히 나의 마음속은 텅 빈 채. 동그랗고 짙고 촉촉한 그 눈동자 속에 내가 담긴다. 오롯이 담긴다. 영원히 그러리라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우스운 착각이었음을 어째서 당신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걸었던 어제까지 깨닫지 못했을까.


"사랑하지."

"거짓말."

"사랑해."

"……."

"정말이야."


아니, 나는 믿지 않아. 당신은 거짓말쟁이야. 당신은 그 붉은 입술로 그만큼 붉은 말만을 내뱉고 있어. 오늘 아침 나는 당신의 진심을 들었는걸.


"그 여자는,"

"……."

"당신이 결코 사랑해서는 안 되는 여자야."


그의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간다. 나는 또 나의 의지와 다르게 다리를 재촉한다. 당신이 이끄는 그 어디든 따라가겠노라, 맹세했었던 어제의 목소리를 떠올려본다. 당신은 그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더라? 나의 대답을 듣던 당신은 정말 행복했을까?


"……."

"리."

"……응."

"사랑해."

"……."

"널 사랑해."


나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그의 손보다 더 뜨거운 눈물로 볼을 한없이 적시고 있었다. 잡히지 않은 손으로 그 볼을 어루만지지만, 당신은 그저 앞을 향해 걷는다. 웃지 않는 당신의 표정 속에는 나를 향한 사랑이 없음을, 잡힌 손을 통해 절절히 느낀다.


하얀 셔츠와 검은 바지. 꼬불거리는 머리칼이 흩날리며 나는 향기.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이 좋았는데. 사랑스러웠는데.


"울지마."

"……."

"울지마."


당신도 나랑 정말 같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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