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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Dec 10. 2019

나도 알 수가 없어서

낸들 알겠느냐

그 어떤 말을 써도 스스로를 다독일 수 없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리가 텅 비고 손가락은 움직이다가 멈추기를 반복하고 다음에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 고민을 거듭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세상에 나를 감싸주고 이해해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아무도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 세상에서, 정답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정답을 나 자신은 원하고 있다고 굳게 믿으며 찾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 정답이 없어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뭘 할 수 있지? 불안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해도 사실 가라앉지 않을 걸 안다. 이미 일그러진 마음은 거센 파도가 몰아치고 폭풍이 불어 혼란스럽다. 손끝을 자꾸 모아 만지작 거린다. 키보드 위에서 수없이 방향을 잃는 손가락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는 것 같아 자꾸 헛웃음이 난다. 뇌가 아니라 손가락이 가는 대로 글을 쓰던 나에게 좀 많이 당황스러운 광경이다. 울고 싶지 않은데 자꾸 눈물이 난다. 애써 유튜브를 틀어봤다. 무엇이든 보면 잊지 않을까? 무엇이든 들리면 잊지 않을까? 그런데 자꾸 생각 난다. 나를 파먹는 생각. 나를 아주 나쁘게 파먹는, 좀먹는, 끈질기게 괴롭히는 생각들. 너는 한참 부족하고 못났네. 너는 어울리지 않네. 너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네. 틀린 생각, 틀린 말을 잘도 하네? 대체 왜 그러는 거지?


곰곰히 다시 생각한다. 그러면 안 돼? 틀린 생각을 하면 안 돼? 틀린 말을 하면 안 돼? 잘못된 선택을 하면 안 돼? 그럼 나는 정말 항상 올바르게 살아야 해? 항상 올바른 말들로 올바른 생각으로 올바른 걸음 걸이로 걸어야 해? 나는 늘 완벽을 추구해야 해? 끝이 보이지 않는 완벽을 대체 어떻게 추구하지? 왜 완벽해지고 싶은 거지? 왜?


아무도 완벽해야 한다고 요구한 적 없는데 이러고 있네.

근데 누군가 꼭 요구해야만 그런 노력을 하는 거야? 그냥 네가 완벽하고 싶어서 그런 건데 왜 또 이유로 삼을 누군가를 찾는 거야? 순전히 네 결정이잖아. 네가 그걸 원하고 있는 거잖아.

대체 왜 원하는 걸까?

그건 나도 모르겠어.


피곤하다. 그냥 생각을 하는 게 점점 피곤하다. 이렇게 쏟아내도 멈추지 않는 생각들이 너무 피곤하다.


그늘에 앉아 있을 때 저 옆에 내려앉은 햇살이 나에게 다가왔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었다. 손을 천천히 덮고,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고, 머리를 따스하게 쓰다듬는 그 햇살에 평생 의지하고 싶단 생각도 잠깐이지만 했었다. 나는 그런 햇살이 되고 싶었던 걸까? 그러고 보면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었나 봐. 사랑이라 믿었던 감정의 기저에는 늘 동경심이 있었다. 저렇게 되고 싶다.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이 되고 싶다.


참 인생 짧다. 자기 자신과 처음 마주해 서툰 대화를 끝내기엔 벅찬 시간이다. 끝나지 않는 대화가 가끔은 즐겁고 가끔은 버겁고 가끔은 슬프다. 비혼을 결심하게 된 데는 수많은 이유가 존재하는데 이런 사실도 그 중 하나다. 그리고 내가 어쩌다 결혼을 해서 낳게 될 아이가 나와 같은 쓸데없는 공상가가 된다면 너무나 괴로울 것 같다는 생각도 비혼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다. 그냥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고 그렇게 행복한 사람만 세상에 가득하면 좋을 것 같아서. 인생은 왜 재시작이 안 될까? 안 된다는 사실만 알지 이유는 모르잖아. 진짜 왜 안 되는 걸까? 알고 싶다. 대단한 의미 부여를 원하는 게 아니다. 진짜 그냥 이유가 알고 싶다. 왜일까? 이유를 사실 몰라도 상관 없다는 건 안다. 내일 내가 일어나고 점심을 먹고 전화를 받고 이러는 데 아무런 영향이 없다. 인생 한 번 사는 것, 내일 하루는 또 내일 하루로 끝이 난다는 것, 우리는 현재를 살아간다고 하지만 사실 현재는 없다는 것. 그 모든 이유를 다 알고서 행동한다면 조금은 다를까? 내일 하루가? 지금을 살아간 과거의 내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 할 생각을 어떻게든 휘발시켜야만 하는 것도 고역이다. 나도 모를 말들이 나에게서 나온다. 버겁다. 그냥 머리 좀 쓰다듬어주면 나을까? 아무 생각 말라고 말해주면 좀 나을까?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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