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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추억 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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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Feb 22. 2020

무표정

"어떤 말을 해도 넌 믿지 않지. 늘 그랬지."

"..."

"똑같아. 이번에도 믿지 않을 거야."


풀이 없이 답만 놓인 문제는 언제나 완벽을 추구하는 너에겐 오히려 답답하기만 하겠지. 점수는 만점을 받겠지만 화가 날 거야. 너는 정말 나에게 만점을 받아도 될까? 네 사랑은 정말 만점짜리일까? 네게 주는 만점에 나는 과연 한치의 의심도 담지 않을 수 있을까?


늦은 오후부터 비가 내렸다. 우산을 갖고 있어 다행이었다. 나에게 하는 그 모든 말들이 빗물처럼 다가오는 그 순간, 나는 네가 비에 젖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저 안도했다.


"아니."

"뭐?"

"못 믿을 거야."


내 사랑은 너를 믿는 나를 믿지 못한다. 네가 주는 그 수많은 관심과 애정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나를 내 사랑이 믿지 못한다. 안타까운 일이지. 아아, 참 안타까워. 비가 내리는 날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우산은 사실 핑계에 불과하지. 너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나는 부족하기만 한 나와 완벽하기만 한 너를 자꾸 재고 비교하고 또 잰다. 저울이 어느 쪽으로 더 기울까?


네가 더 무거우면 좋겠다.

내 기분이 한없이 날아갈 수 있도록.

네가 더 무거우면 좋겠다.

이 곳에서 내가 영영 내려오지 않도록.


"울지 마."

"대체 언제면 돼?"

"나도 잘 모르겠어."


나도 정말, 잘 모르겠어. 내 사랑은 널 언제 믿을까. 내 사랑은 너에게 언제 근사한 풀이를 줄 수 있을까. 언제면 이 빗소리에 내 목소리 실어 너에게 마르지 않은 사랑을 고할 수 있을까. 우산 타고 흐르는 빗방울에 마음만 다시 숨겨보는 밤. 그리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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