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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May 18. 2020

픽션

주말 허상

정말 오랜만에 서점으로 향했다. 서점을 가야겠다고 밥과 함께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설렜다. 서점을 가는 일은 그런 일이었다. 밥을 다 먹고 서점을 향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막상 서점에 도착해 한 바퀴를 쭉 돌아보는 동안 기운이 빠졌다. 읽고 싶은 책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지금 어떤 책을 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두 바퀴째, 슬슬 우울해졌다. 세 바퀴째, 살짝 비참해졌다.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 나는 지금 어떤 생각에 빠지고 싶은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 그대로 돌아 빈 손으로 나왔다. 처음 있는 일이라 조금 당황스러워하면서.


책만큼이나 요즘 들어 알 수 없는 일이 많아졌다. 이해할 수 없는 생각들, 사람들, 상황들, 시간들. 내가 서서 바라보는 풍경이 100%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과정이다. 스물아홉이나 먹고서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다. 성장은 대체 언제까지 나를 좀먹을까?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한동안 '교육'이란 행위에서 근 20년 만에 해방됐다는 기쁨을 동네방네 자랑하곤 했다.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고, 제대로 익혔는지 확인하고, 어떻게 활용해나갈지 끝없이 고민해나가야만 하던 세월 근 20년. 새삼 다시 적으려니 지긋지긋한 숫자다.


그런데 그 기쁨이 채 1년도 되지 않아 싹 가셨다. 나는 다시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퇴근길에 집이 아닌 곳으로 발을 내딛는다. 누군가의 지도를, 조언을 받지 않으면 삶이 불안하다. 나도 모르는 새 20년이란 세월이 지나는 동안 내 삶은 그런 삶이 되어버렸다.


서점을 나서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곁을 누군가 스쳐 지나갈 때마다 궁금했다. 자기 자신이 정말 하고픈 일을, 품고픈 생각을, 듣고픈 말을 알고 있는지. 나만 그런가 싶어 우울했다.


금요일이 가장 싫다.

그나마 좋았던 월요일마저 싫어졌다.

안식처가 사라졌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나의 선의를 돌려받을 수 있을까? '당신의 선의는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내가 베풀었던 선의만 돌려주었으면 한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은 다행히 내 머리에서 그친다. 인간 불신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누군가의 조언에 의지하기 바쁜 나는, 이상하리만치 나를 싫어하는 게 분명한 사람들이라고 정의할 땐 누구의 조언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마도 나를 싫어하는 건 나 하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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