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 Jun 04. 2020

우리는 언제쯤

어쩌면 영원히

손을 모아 기도하는 너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신은 없는데 왜 기도를 하느냐고. 너는 내게 아주 가볍게 말을 건넸다. 신이 없어서 기도를 한다고. 이 기도를 들은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우리의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그게 흔히들 생각하는 그런 신이 아닐지라도 좋으니까.


나는 그 말에 웃었다. 당연히 기분 좋아 웃는 웃음은 아니었다.


우리는 비가 내리는 날을 싫어한다. 방 안 어디에 발을 붙여도 마음이 불편하다. 나의 것이 아닌 집이 더욱 멀어지는 날이 된다. 비가 내리는 날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만큼 단순하다. 발 디딜 곳이 없다.


무의미한 분노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망신창이가 된 날은 어김없이 비가 내리길 바랐다. 발 디딜 곳이 없는 이유가 다른 이유가 아닌 그저 '비가 와서'이기를 바랐다. '내가 혼자여서', '네가 혼자여서', '우리가 둘이어서', 혹은 '둘이 아니어서'. 그런 이유가 아니라 그냥 '비가 와서'이기를.


그 날은 갑자기 터진 너의 코피가 멎지 않아 눈물이 자꾸만 났다. 왜 이런 날 비는 내리지 않을까? 왜 이런 날은 마냥 맑은 하늘이 이 집 위를 뒤덮고 있을까? 얼굴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도 개의치 않고 네 얼굴에 헤진 수건을 들이밀기 바쁜 내 손에 훅 더운 열기가 끼쳤을 때, 눈물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들리는 느릿한 네 목소리는 아주 작은 기억 한켠에 위치한 다 늘어진 테이프 소리 같아 나는 웃었다. 


당연히 기분 좋아 웃는 웃음은 아니었다.


"우리는 언제쯤 기분 좋아 웃을 수 있을까?"


어쩌면 영원히 기분 좋아 웃을 일은 없을지 몰라.


왜곡된 목소리는 계속 귓가에서 늘어진 채 재생되고 있었다. 

비가 오지 않은 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픽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