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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Aug 24. 2020

하현

밤의 사랑

손톱이 잘려나갔다. 손가락 끝이 그제야 완만한 곡선을 그렸다. 형광등 빛을 반사하는 손끝을 보면서 문득 나는 나의 손가락과 사랑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작고, 귀엽고, 뭉툭한 나의 이 사랑스러운 손끝.


그렇게 사랑에 빠진 나의 손가락으로 나에게서 등 돌린 너의 어깨를 두드린다. 아주 조심스럽게, 또 예쁘게 두드린다. 뒤돌아보는 너에게는 사실 관심이 없다. 그냥 나의 사랑스러운 손가락이 무언가에 닿아 빛나는 걸 보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너보다 이 작은 손끝을 더 사랑하니까 당연한 일이다.


나와 눈을 마주친 네가 입을 오므리는 걸 봤다. 그러다 입술이 도톰하다 못해 삐쭉 앞으로 튀어나온다. 예쁘지 않다. 나는 무심결에 그 입술 위로 나의 사랑스러운 손끝을 갖다 댄다. 그럼 네 입술도 빛이 난다. 아주 작고, 사랑스럽게 붉어진다.


보렴.

이 나의 작고 사랑스러운 손끝.

그 손끝에 닿아 빛이 나는 너를.

사랑이 번져나가는 순간을 보렴.


웃었다. 너는 비로소 내 손끝에 닿아 사랑이란 가치를 품는다. 평생 나의 손끝에 맞닿지 않으면 그 가치도 곧 죽어버릴 거야. 나는 나지막이 저주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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