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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Dec 15. 2021

same boat 21.16

2012년 2월의 어느 날.

‘춥네.’


나는 목도리와 목이 만들어낸 작은 틈새 속으로 코까지 고개를 푹 파묻고 눈길을 걸으며 머리로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양쪽 주머니에서 나올 줄 모르는 손은 굳게 말려 있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힘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감각적으로 느끼진 못했다.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가로수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스산했다. 가로수 아래를 바삐 지나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들이 그 분위기를 애써 지워나가는 듯했다. 다들 어딘가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빠르게 옮기고 있을 터였지만 나는 지금 왜 걷고 있는 건지 이유조차 쉽게 만들어내지 못했다. 바지 주머니 어디선가 진동이 울리는 것 같지만 무시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당장 화가 머리 끝까지 나게 만든 상대의 전화를, 아무렇지 않은 듯 능청스레 받을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


[리. 멍청하게 굴지 마.]


그래, 물론 내가 그런 소리를 듣지 않을 만큼 시보다 머리가 좋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내가 화가 났던 것은 멍청하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보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바로 시였다는 것, 그 자체였다. 적어도 시만큼은 나에게 늘 긍정적인 말만을 건네던 사람이니까. 나에게 좋지 않은 말을 쏟아내는 사람 사이에서도 버틸 수 있게, 그런 좋지 않은 말들에 '감히'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상반되는 말들을 조용히 다가와 묵묵히 전해주던 사람이었으니까.


"감히 말이지."


속으로는 벌써 이를 천 번도 더 바득바득 갈았다. 물론 이게 그렇게 화를 낼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단순히 시가 나를 보고 '멍청하게’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이렇게까지 열을 낼 필요는 없다. 알고 있다. 한 초등학생이 손가락을 동원해 수학 문제를 푸는 모습을 본 옆자리 친구가 도와준답시고 '이 바보야'라는 첫머리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을 때, 그때 느끼는 감정과 유사하달까. 어른이 되어서 그런 소리를 듣는다면 당연히 아무런 의미 없이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정도의 말이지만 받아들이는 내가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시에게서 들은 '멍청이'라는 단어의 '말의 무게'를 계속해서 재고 있는 것이다. '이 바보야'라는 말의 절대적 의미가 아닌, 그 못 푸는 문제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던 초등학생이 스스로 자책감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바보'라는 단어를 직격타로 들었을 때 받았을 아주 '상대적'인 상처와 똑같은 크기로 강타를 당한 거라고!


"애플티."


당장 애플티를 마셔야겠어. 달면서도 끝 맛이 떨떠름한 애플티가 마시고 싶어졌다. 따뜻한 기운이 새어 나오는 작은 찻집 앞을 지나려다 무심코 멈춰 섰다. 나의 얇은 외투를 가볍게 밀치고 위풍당당하게 품 속으로 복잡하게 얽혀 들어오는 바람이 심장에 사무치도록 시리다. 체온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그 기세에 저절로 미간도 움츠러들었다. 홧김에 집을 나와 버리는 바람에 옷을 그렇게 두껍게 입고 나오질 못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진동은 계속해서 울리고 있지만, 나는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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