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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Jun 24. 2016

이해의 영역

나우

나는 어릴 때부터 눈앞에 닥친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넘기는 '인사치레'와 같은 진심이 없는 말들을 몸서리치도록 싫어했었다. '그래 알았어, 나중에 사줄게'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몇 달 동안이나 가슴에 담아두고 다시 물어봤을 때, '사줄 수도 있다는 소리였지 반드시 사준다는 것은 아니었어'라는 말을 듣고는 집이 떠나가도록 울었던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부모님도 점점 쓸데없는 말을 필요 이상으로 진지하게 대하는 나로 인해 마음에도 없는 말은 하지 않게 되셨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크게 입었던 적이 있었다. 다녔던 동네의 초등학교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다행히도 2년 동안은 같은 반에 초등학교 동창들이 몇몇 있어 무탈하게 보냈었다. 하지만 3학년이 되기 직전 반 배정이 끝나고 나니 같은 반에 안면이 있는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방학 내내 어떻게 하면 새로운 친구를 잘 사귈 수 있을지 개학 전날까지 걱정을 했었다. 그렇게 두근거림 반, 두려움 반인 마음 상태로 개학을 맞이하고서 우연히 좋은 친구와 첫 짝꿍이 되었을 때는 무척 기뻤다. 더군다나 그 친구를 통해 알게 된 5명의 친구와 1년 가까이 같이 다니게 되면서, 졸업을 앞두게 된 겨울방학이 다 되어갈 때까지만 해도 무척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의 이간질로 인해 생겨난 오해로 언제 친하게 지냈냐는 듯 냉담하게 친구들이 돌아서기 시작했다. 내가 이제까지 쏟아온 진심들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것인지 어떻게 그렇게 나에게 진위를 묻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나에 대해 단번에 판단을 내릴 수가 있는 것일까. 그동안의 내 모든 행동들을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그들의 180도 달라진 말과 행동들의 차이에서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다. 진심을 가득 담아 마음을 쏟을 때 내가 아무리 그 마음을 무겁게 느끼더라도 상대방은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단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느꼈던 일이었다.


물론 어른이 되고 나서도 내가 가까이 두고 싶은 사람에게는 정성을 다 쏟다 보니 그만큼 조그만 일들에도 상실감을 크게 겪게 되었다. '이제까지 내가 쏟은 마음은 그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나 보구나' 이 과정을 여러 번 거치고 나니 그제야 나만큼 나를 알아주고 위해줄 사람은 없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100을 베푼다고 해서 100을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에게 100인 그 마음이 상대방에게는 50으로 가닿을 수도 있다. 그리고 반대로 나는 50 정도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상대방에게는 100으로 가닿을 수도 있다. 살다 보면 기대하는 만큼 지치고, 기대하지 않았던 만큼 놀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를 형성해나가는 과정에서도 조금씩 기대감을 덜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된다.

나에게는 100만큼 중요한 사람이지만 정작 그 사람에게 나는 10 정도로 중요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리고 반대로 나에게는 10 정도의 관심을 받는 사람이지만,
오히려 그 사람은 나에게 100만큼 관심을 쏟고 있을 수도 있다.

라면서.


하지만 또 바보 같게도 100만큼의 정성을 쏟았다. 그리고 '나도 너에게 그만큼의 보상을 줄게'라고 말하고는 정말 보상을 안겨주는 사람을, 아직은 보지 못했다. 이 기대감이 얼마나 삐뚤어지고, 못되고, 한심한 것인지 자신도 잘 알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 멍청한 기대를 부여해 바보로 만드는 과정. 언제까지 더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위축되어 작아지는 자신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까. 사람에 대한 기대감을 완전히 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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