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더 나은 미래로 향하는 문

<몬스터 주식회사 리뷰>

by mockingJ

거짓된 세상을 뒤로한 채 배에 오른 트루먼(짐 캐리)은 자신을 규정짓던 세상의 벽을 마주한다. 벽을 따라가던 중 그는 문을 발견하게 되고 그곳을 향한 힘찬 첫발을 내딛으며 <트루먼쇼>는 마무리된다. 트루먼이 향한 세상이 어떤 곳인지는 모르지만 그 앞에 펼쳐진 세계는 이전보다는 더 나은 곳임이 틀림없다. 닫힌 문은 인물들 간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더 나아가 그들의 삶을 감옥같이 옥죈다. 하지만 굳게 닫힌 문을 열어젖힌 순간 더 넓은 세상으로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언니인 엘사(이디나 멘젤)와 닫힌 문을 사이에 두고 고심을 하던 안나(크리스틴 벨)는 한스(산티노 폰타나)를 만나 ‘사랑은 열린 문’이란 노래를 부르며 닫혀있던 그녀의 세상의 문을 박차고 나간다. 비록 그녀가 처음으로 열고 들어간 문이 더 나은 세상의 확대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아픈 경험을 토대로 굳게 닫혀있던 가족의 문을 열게 된다. 결국 <겨울왕국>은 인물들 간 닫혀있던 문을 차곡차곡 열어가며 더 나은 세상으로 향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몬스터 주식회사>는 몬스터와 인간들 간 구분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그리고 여기서 또한 모든 문제의 중심엔 언제나 문이 있었다.

몬스터 주식회사는 몬스터 세계의 모든 에너지를 담당하고 있는 거대 기업이다. 이곳에서 우수사원인 설리반(존 굿맨)과 그의 파트너 마이크(빌리 크리스탈)가 근무하고 있다. 그들이 에너지를 창출하는 방법은 매일 배정되는 문 너머에 있는 아이들의 비명을 채집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몬스터 세계는 수많은 혜택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비명을 채집하는 것은 위험 또한 수반하는 작업인데 인간 세계의 어떤 것과도 접촉하지 말아야 하며, 만약 그 선을 조금이라도 넘어서는 순간 CDA(Child Detection Agency, 아이 검역국)가 어김없이 등장해 철저한 방역의 고통을 선사한다. 여느 날처럼 평화로운 퇴근길에 설리반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문을 발견한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려 문을 연 설리반은 자신의 세계에 절대로 들이지 말아야 할 한 소녀를 들이게 되면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닫힌 문 뒤 숨겨진 몬스터들의 세상은 피트 닥터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면서 이후에 이어질 독특한 세계관의 출발점이었다. 상상력으로 점철된 작품이지만 그 안에 사는 인물들은 몹시 관습적이다. 에너지 위기와 점점 어려워지는 비명 수집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자원에 대한 해결책보다는 더 큰 비명을 지르게 할 몬스터를 만드는데 급급해한다. 하지만 몬스터 세계 속 시작을 알리는 비명은 인간이 아닌 몬스터에게서 시작된다.

(말에 모순이 있겠지만) 사실 몬스터들은 인간적이다. 그들은 사회 속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회사에 나가며 그들 또한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 다만 그들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위험한 인간세상으로 향할 땐 두려움이란 감정을 잠시 숨긴 채 문 너머로 나서며 인간 세계에 두려움만을 남긴 채 돌아온다. 서로 두려움이란 문을 사이에 둔 몬스터와 인간 세계를 천진난만한 아이 부(메리 깁슨)가 넘어가면서 두 세계엔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몬스터 세계로 넘어온 아이에게 설리반은 부(Boo)라는 별명을 지어준다. 누군가를 놀래킬 때 사용하는 단어이자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아이들의 놀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부는 점점 자신을 드러내면서 인간에 대한 몬스터들의 편견을 깨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부가 몬스터 세계의 편견을 깨기 위한 존재라면 반대로 편견을 강화시키는 인물 또한 존재하는데 바로 회장인 워터누즈다.

워터누즈(제임스 코번)는 오랫동안 회사를 이끌어왔으며 그의 경영전략은 몬스터들이 인간에게 두려운 존재로 남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 설리반에게 “너는 너무 많은 것을 봐 버렸어”라는 말로 미루어볼 때 워터누즈 또한 웃음이라는 새로운 에너지에 대해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가능성의 존재는 자신의 할아버지대부터 이어온 모든 성과를 부정하는 것이기에 그는 사실을 철저히 은폐하고 공포만이 진정한 몬스터들의 정체성이라 주장한다. 워터누즈는 경영인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이익보단 관습을 고수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결국 그는 비명 추출 기계라는 비윤리적인 방식에 손을 대기에 이른다.

관습에 지배받던 워터누즈는 잘못이 드러나자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자신을 변호한다. 그리고 자신이 사라지면 몬스터 세계의 미래는 없다는 협박을 거침없이 날린다. 그 말을 들은 설리반과 마이크는 눈 앞에 놓인 막연한 미래에 잠시 동안 불안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과거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용기를 갖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시작한다.
우리는 열리지 않는 수많은 문을 두고 살아간다. 그 뒤는 어떤 것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어떤 이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온갖 저주를 내뱉으며 우리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협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말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그저 무한한 가능성을 앞에 둔 이들을 시기하는 것뿐 더 나은 방법을 제시해주진 않는다. 미래를 향하는 문을 열기 전엔 막연함에 의한 두려움과 공포가 있겠지만 그 문 뒤엔 더 넓은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이 틀림없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꺾이지 않은 불꽃의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