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더라키 Nov 23. 2020

우리는 마스크를 쓴다.

다른 얼굴들

We wear the mask that grins and lies,
It hides our cheeks and shades our eyes,--
...
- We Wear the Mask by Paul Laurence Dunbar -


매일 아침 집을 나서기 전 자연스레 마스크를 하나 집어 든다. 집을 나선 후부터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딜 가든 항상 쓰기 위해 노력한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마스크를 쓴 모습으로 기억하고 인식된다. 관계를 맺기 위해서 마스크는 필수적이다. 마스크는 나와 누군가들을 서로 보호하기 위한 훌륭한 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자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쓰고 있는 곳엔 종종 트러블도 생긴다. 집으로 돌아와서야 벗어 버리고 그제야 홀가분함을 느낀다. 가끔은 돌아와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인 인격을 '페르소나(persona)'라고 칭했다. 본래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의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일컫는 말이었다. 융에 의하면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가면)를 가지고 상황에 따라 적절한 관계를 이루어 간다고 한다. 페르소나는 진정한 자신이 아닌 사회적 기대나 요구 또는 개인의 사회적 목적과 필요에 따라 달라지는 역할이나 모습 등을 의미한다. 더 간단히는 남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다. 페르소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지만 관계를 위해서, 즉 나와 사회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써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찌 보면 자아와 현실세계의 타협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우리는 주변의 누군가들에게 좋게 인식되기 위한 노력을 한다. 좋은 선배로, 후배로, 부모로, 친구로서 혹은 유쾌하고, 친절하고, 착한 사람으로 보이길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마스크(가면)를 쓴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가끔 지나치게 밝거나, 혹은 과하게 친절한 사람들이 있다. 별생각 없던 시절에는 그런 성격이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게도 느껴졌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든다. 본인이 원해서든 그렇지 않든 본래의 자신과 다른 모습으로 살다 보면 그 괴리에서 오는 피로 또한 어쩔 수 없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피로는 생각보다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도 각자 비슷한 종류의 피로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착한 아이 증후군이나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 같은 것만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느껴지는 삶의 무게와 그로 인한 피로감도 아마 같은 이유에서 오지 않을까 싶다.



본래 내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어찌 보면 가면을 쓰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관계로 이루어진 복잡한 사회 속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먹고살기 위해'로 도달하는 여러 이유들 뿐 아니라,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라도 적절한 가면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고 경험이 생길수록 새로운 가면은 계속해서 생겨난다.


하지만 지나친 몰입이나 더 나아가 가면 쓴 나인 '페르소나'와 진짜 나인 '자아'를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밖으로 드러나는 페르소나 뒤에는 항상 상반되는 그림자가 공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면이 커지고 두꺼워질수록 마찬가지로 그림자도 계속해서 커지고, 두 가지 모습에서 오는 괴리의 폭 또한 점점 늘어난다. 이에 따라 감당해야 할 피로감도 함께 커진다.


마냥 화려해 보이고 남 부럽지 않게 잘 살 것만 같던 연예인들의 갑작스러운 자살 소식에 안타까움과 연민이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자신의 인생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살아야 하는 삶에서 오는 허무함은 상당할 것 같다.



자아와 페르소나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그 차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인식하고 그림자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구나 요즘같이 자신을 숨기고 보여주기 위한 모습을 생산하는데 치중하고 있는 시대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진짜 내가 누구인지 보다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에 나를 맞추다 보면 그 균형은 금세 무너지고 삶은 추락한다.


페르소나가 나의 한 부분이듯 이면의 그림자 또한 나를 구성한다. 페르소나를 통해 주변과 관계를 이루어 간다면, 그림자는 내면의 나와 관계를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상대적으로 밝고 좋은 면을 페르소나가 담당한다면 그림자는 반대되는 어둡고 부정적인 면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지만 이를 통해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이해하고 겸손함을 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기도 하다.



예상치 못한 COVID-19로 이젠 마스크 없이는 밖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마스크는 전염을 막기 위한 좋은 수단이지만,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는 마스크를 쓴 모습의 사람들을 기억한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내 얼굴 조차 몇 번 보지 못하는 날도 있다. 얇은 마스크 한 장일뿐인데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고 마스크를 쓰는 얼굴 주위는 종종 뒤집어진다. 그래서 가끔씩은 거울 앞에서 마스크를 벗고 괜찮은지 얼굴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우리의 감정과 내면을 가리는 가면도 비슷하다. 분명 필요하고 유용한 수단이지만 그에 따른 대가가 존재한다. 오래 쓰면 얼굴이 아니라 마음을 병들게 한다. 갑갑하다고 해서 쉽게 벗어던질 수도, 아니 그럴 틈조차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한다. 가면을 오래 쓰고 있으면 그 안에 있는 진짜 자신의 모습이 잊히기 마련이다. 가끔씩이나마 모든 가면을 벗어놓고 괜찮은지, 잘 지내고 있는지 진짜 내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