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더라키 Nov 16. 2020

위로가 필요한 순간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누구나 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누구나 다 모든 것을 말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지금이 그 순간이다.
이 세상에 혼자서 감당해야 할 슬픔은 없기에,
이 세상에 혼자만 짊어져야 할 짐은 없기에,
그가 있는 거고
그의 그가 있는 거고
그의 그의 그가 있는 거다.
아무리 강하고 독한 사람이라도
결국 다 가슴속 이야기를 털어놓고 만다.
너나 나나 다 사람이기에,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기에.
- 김이율 / 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 中 -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슬퍼서, 외로워서, 삶이 버거워서, 인간관계에 지쳐서 혹은 정말 아무 이유 없이도. 하지만 제대로 된 위로를 받는 것도 하는 것도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때때로 우리는 나이가 많다거나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또는 어떤 의무감에 의해 섣불리 위로를 전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위로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다들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진정한 위로를 건네기 위해선 이해와 공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무의미한 수많은 말 보다 아무 말 없이 그저 들어주는 것, 혹은 그저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한 때는 청춘이니까 아파도 참고 버티라는 위로가 유행처럼 번졌었다. 하지만 곧 아파보지도 못한 사람이 하는 말에 아프면 청춘이 아니라 환자라는 우스개 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 이후에는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면서 긍정의 힘을 믿으라거나 미움받는 용기도 필요하다며 자존감을 높이라는 새로운 조언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요즘은 무엇을 하라거나 힘내라는 말조차 없이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는 위로들이 쏟아지고 있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고 적절한 위로를 건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기라도 한 듯 시대의 위로 방식도 변화되어 온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사람들은 대게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오면 연인이나 가족, 친한 친구처럼 위로를 해 줄 누군가를 떠올린다. 분명 주변에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가끔씩은 그런 방법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그건 아마도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놓치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은 나 스스로의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언젠가 평소와는 다르게 끝없는 좌절감에 빠져 있던 순간이 있었다. 그때 우연히 한 강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을 웃기고 말을 재미있게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우울증에 걸려 모든 걸 내려놓기 직전 수도원을 들어갔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또렷한 말 한마디를 들었다고 한다. 바로 나 스스로가 나에게 하는 위로였다.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그 이야기를 듣고 왠지 모르게 나도 위안이 되어 이후로도 여러 번 되새기곤 한다. 주변엔 위로의 말이나 방식들이 넘쳐 나지만 정작 나 스스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부족하지 않은가 싶다.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의 위로도, 시대에 따라 바뀌는 그런 뻔한 위로도 좋지만 가끔씩은 편안한 마음으로 솔직하게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