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의 과정
매주 토요일, 특별한 일정이 있지 않는 이상 클라이밍 강습을 위해 암장으로 향한다. 마음 같아선 매일이라도 가고 싶지만 어깨를 다친 후부터는 무리하지 않기 위해 주말로 시간을 제한했다. 그러다 보니 이번 토요일도 별 일이 없길 고대하며 한 주를 보낸다. 그리고 그렇게 기다려온 토요일의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의 마음가짐만큼은 훈련을 하는 운동선수 못지않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다르겠지만.
기다리던 토요일, 이번 주도 어김없이 강습을 받고 있었다. 강습의 마지막 문제를 시도하기 위해 암벽화를 신던 찰나. '툭'. 암벽화의 고리가 끊어져 버렸다.
'신력도 실력'이라고 초보티를 벗어날 때쯤 한참을 고민 끝에 구입해서 1년 가까이 함께 하고 있는 암벽화다. 지금은 너무나 익숙해진 녀석, 자세히 살펴보니 그사이에 고무도 많이 헤지고 낡기도 많이 낡았다. 새삼 적지 않은 시간을 나와 함께 해준 녀석이 고맙기도 했다. 덕분에 많이 늘기도 했으니까.
처음 이 녀석을 사고는 한동안 후회를 많이 했다. 조금이라도 잘하고 싶어 일부러 사이즈를 많이 낮춰서 산 암벽화는 아무리 신어봐도 잘못된 선택이었다. 신고서 1분만 지나도 발가락부터 시작된 고통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그래도 샀으니 어떻게든 신어야 하기에 늘리기 위한 온갖 방법을 찾아서 시도했다. 집에서 틈틈이 신고 다니기도 하고, 양말을 꽉꽉 채워 드라이기로 데워도 보고, 비닐에 물을 채워서 냉동실에 얼리기도 했다. 노력 덕분인지 그나마 아주 살짝 늘어난 덕분에 신을 만큼은 되긴 했지만 비닐은 필수였다.(암벽화를 처음 신으면 발이 들어가지 않아서 비닐을 덧대고 신기도 한다.)
한동안 그렇게 폼 안나는 비닐 암벽화를 신었다. 전에 신던 건 몇 번 신고 나서 금방 적응이 됐는데 이 녀석은 쉽사리 길들여지지 않았다. 잘못된 선택에 후회를 하면서 몇 달을 보내다 비닐을 벗어보라는 강사님의 권유에 다시 맨발로 신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몇 주가 지나자 신기하게도 발에 딱 들어맞기 시작했다. 그제야 적응이 되는 것 같았다.
보통 암벽화는 발 끝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맨발로 신는다. 그래서 운동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땀이 그대로 가죽에 스며든다. 사실 이 과정이 신발과 발이 서로에게 적응을 하는 시간이다. 땀이 묻은 가죽은 천천히 발의 모양에 맞게 늘어난다. 발도 신발 안에서 적당한 자리를 잡아간다. 그런데 난 자연스러운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강제로 맞추려고 의미 없는 애만 쓰고 있으니 길이 들 리가 만무했다.
새로운 것들은 처음엔 모두 낯설다. 낯섦은 설렘도 주지만 어색함 그리고 때론 불편함도 동반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은 점차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바뀌어 간다. 이 과정에는 충분한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은 지나고 나면 낯섦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빠르게, 하지만 그 과정에서는 변화를 느끼지 못할 만큼 느린 속도로 흘러간다. 그리고 이렇게 익숙해지다 못해 당연해진 것들은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삶의 한 부분에 자리를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