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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라키 Jan 25. 2021

어른을 보았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아저씨 삼 형제와 거칠게 살아온 한 여성이 서로를 통해 삶을 치유하게 되는 이야기

2018년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역시나 시작은 우연히,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여운이 진하게 남는 드라마를 만났다.


사전에 아무런 정보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초반 몇 회를 보는 동안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생각과는 달리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암울함이 전반적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회차를 나아갈수록 이 암울함은 사람 냄새와 따뜻함으로 변해갔다. 다 보고 난 지금까지도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진정한 어른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누구나 각자의 아픔은 존재한다.

현실의 우리는 모두 외롭다. 각자의 아픔과 사연을 가진 채 살아간다. 이런 우리들처럼 드라마의 등장인물들도 각자 저 마다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흔하진 않지만 찾아보면 분명 어딘가 한 명쯤은 있을 법한 그런 사람들. 아마도 그래서 더욱 공감하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안, 여섯 살 어린 나이에 병든 할머니와 단둘이 남겨졌다. 정당방위로 무죄판결은 받았지만 살인전과를 가지고 있다. 부모님이 남긴 사채빚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버티면서 살아간다.

동훈, 대기업 부장에 변호사는 와이프다. 항상 바르게 살아왔고 남들이 보기엔 번듯해 보이지만 싫어하는 대학 후배가 대표로 있는 데다 심지어 와이프는 그놈과 바람까지 났다.

상훈, 오래 다닌 회사에서 잘리고 시작한 사업까지 말아먹어 신용불량자 신세다. 몸도 안 좋은데 이혼 위기까지 왔다.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는 순수하고 인정 많은 맏형이다.

기훈, 한 때는 칸(Cannes)까지 갔던 영화계의 천재였다. 하지만 20년째 진전 없이 백수생활 중인 3형제 중 막내. 결국엔 오랜 꿈을 포기하고 상훈과 함께 청소방을 시작했다.

준영, 가진 것 하나 없지만 지지 않기 위해 있는 척 연기했다. 그 덕에 대표이사까지 올랐으나 주위에서 호시탐탐 끌어내리기 위해 기회를 엿본다. 시기하던 대학 선배 동훈의 와이프와 바람을 피운다.


이외에도 남편의 1순위가 되지 못해 외로워하다 바람까지 난 동훈의 아내 윤희, 어릴 땐 착했으나 아버지의 죽음으로 변해버린 젊은 사채업자 광일, 좋아하던 남자가 출가를 했지만 아직까지 마음에서 놓지 못하는 정희, 기훈의 영화 주인공이었지만 하도 구박을 받아서 연기 트라우마로 망가져 버린 유라, 밥벌이를 지키기 위해 서로 물어뜯는 회사의 임원들, 한 때 잘 나갔으나 은퇴하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인정 많은 후계동 사람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다.

드라마는 지안이 동훈의 휴대폰을 도청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방영 당시 다른 것들과 함께 도청이라는 소재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다고 하나, 당연히 도청이라는 행위 자체의 정당성을 이야기하거나 합리화하려는 의도가 있을 리는 없다. 


평소 우리가 바라보는 타인의 삶은 단편적이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되어보는 수밖에 없다. 사실상 불가능 한 방법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전하려는 메시지 그 기저에는 타인에 대한 이해가 깔려있다. 이를 위해 현실적으로 가장 가까이서 타인의 삶 전부를 간접적으로 나마 경험할 수 있는 극적 장치로 도청을 선택한 것이다.(비슷한 이유로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종종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극 중에서 지안은 도청을 통해 동훈의 숨소리 하나까지 모든 것을 듣게 되고 결국 그와 그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아저씨 소리 다 좋았어요. 아저씨 말, 생각, 발소리, 다. 사람이 뭔지 처음 본 거 같았어요."


이와 반대로 동훈은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섣불리 짐작하거나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지안을 이해해 나간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살인 전과와 하루하루 버텨가는 삶이 힘겨워 높아진 마음의 벽에 그 누구에게도 친절하거나 살가울 리가 없다. 하지만 동훈은 보이지 않는 지안의 삶을 하나씩 알게 되고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 내가 널 알아."



인간은 서로를 통해 위로를 받는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면 그 사실 만으로도 서로 위안이 되고 위로를 받는다. 그저 형식적인 말이나 다 안다는 듯 한 섣부른 조언 대신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해 주는 것. 그러고 나면 진심 어린 짧은 한 마디, 혹은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삶의 무게를 버텨내고 살아갈 힘이 된다. 드라마에서도 이를 이야기 전반에 잘 담아낸다.


아무리 힘들어도 악착같이 버티며 살아가던 지안이 자신을 위해 광일에게 찾아가 싸우면서 하는 말("나 같아도 죽여. 내 식구 패는 새끼들, 다 죽여!")을 듣고는 자리에 주저앉아 쌓아 왔던 울음을 터트린다. 처음으로 자신을 이해해주는 어른을 알게 된 것이다. 동훈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버텨낼 힘을 얻는다.


"죽고 싶은 와중에.. 죽지 마라,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다. 그렇게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숨이 쉬어져. (...) 고맙다. 옆에 있어줘서."



진정한 어른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이 나이와 책임만으로 어른이 된 스물한 살 지안이 진짜 어른들을 만났다. 동훈 외에도 그의 직장 동료들과 형제들. 그리고 한 때 잘 나갔지만 이제는 한 물 가버린 후계동 사람들. 왠지 허술해 보이긴 하지만 마음 따뜻한 멋진 어른들이었다.


해야 할 말은 하면서도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절대 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엔 책임을 지지만 상대의 잘못에는 만회할 기회를 주고 용서하는. 내 사람들에게는 한 없이 약하지만 그들을 위한 일,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두려움 없고. 섣불리 상대를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서로에게 진심으로 같이 기뻐해 주고 아파하고 울어줄 수 있는.


모든 걸 할 수 있는 히어로 같은 완벽한 어른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와 닿게 되는 평범한 사람. 평범한 어른들의 모습. 드라마 구석구석 어떤 모습이 어른인가에 대해 느끼고 생각할 거리들을 담아놓았다. 



끝난 뒤 유난히 기억에 남는 장면과 대사가 많았던 드라마다. 지안-동훈 외에도 등장인물 개개인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서 위로, 어른, 가족, 본질, 삶의 방식 등 많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고 흔하지 않게 엔딩마저 훌륭했다.


많은 이들이 이 드라마를 소주에 비유한다. 시작은 쓰지만 뒤에 가서는 따뜻해지고 퍽퍽한 삶에서 위로가 되어주는 그런 한잔. 극 중 등장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받지만, 결국 드라마는 인간적인 따뜻함을 통해 보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혹시나 위로가 필요하거나 술 한잔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천천히 한 번 재생시켜보기를 추천한다.


파이팅!

https://www.youtube.com/watch?v=ll4QIbU1kv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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