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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라키 Feb 08. 2021

일요일의 광어회

나의 소울 푸드

토요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점심을 먹고 나면 컴퓨터 앞에 앉는다. 마무리하지 못한 일을 떼어놓지 못하고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얼마 보지 못한 해는 어느새 또 사라져 있다. 일주일에 52시간만 일하라고 법으로 정해주기까지 하는데 습관인지 병인지 불안함에 자발적으로 불법을 저지르는 성격은 도통 나아지지 않는다. 그렇게 황금 같은 주말 하루가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일요일. 역시나 늦잠은 필수다. 미뤄왔던 것들이 서로 해달라는 듯이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무리 편해진 세상이라고 해도 집안일은 사람 손을 타야만 한다. 그렇게 부지런한 척 몸을 움직이는데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찜찜함이 계속 남아있다. 


하루를 무언가로 가득 채우긴 했지만 끝나갈 무렵의 공허함은 더 커져있는 날들이 있다. 요즘의 주말이 자주 그렇다. 충분히 보냈다기보다는 왠지 모를 조급함과 불안함으로 하루를 소진시켜 버린 느낌이랄까. 대충 마무리하고 잠시 침대에 몸을 뉘어보지만 아파오기 시작한 머리는 나아지긴커녕 어질 거린다. 최후의 방법을 써야 할 시간이 왔다.


'송파동 xxx / 광어회 / 카드'. 

주소와 메뉴가 적힌 문자 하나를 그대로 복붙 해서 보낸다.


'광어 12 배달료 2'.

주문을 보내고 얼마 뒤 역시나 요건만 간단하게 적힌 문자가 돌아온다. 요즘 같은 시대에 문자 배달이 웬 말이냐 싶긴 하지만, 그래야 가격도 싸고 사장님도 더 남는다니 윈윈이자 나름 단골에 대한 의리다. 사정상 전화는 받지 못한다는 이 번호와의 대화는 같은 내용으로만 몇 년이나 진행되고 있다. 잠깐 차린 정신으로 문자를 확인하고 다시 침대에 드러눕는다.


언제부터 회를 좋아했는지 기억은 나질 않는다. 조리 따위는 필요 없이 그저 칼로 어떻게든 떠놓기만 하면 되는 그 단순함과는 상반되게 쫄깃한 식감에 고소함이란, 신선함은 덤이다. 누군가는 초장 맛으로 먹는 다지만 초장 없이 그대로 맛있어야 그게 진짜 회다. 도시를 떠나 먼 바닷가에서 짠내를 맡으면서 먹는 회는 당연히 맛있지만 이런 날에 혼자 시켜먹는 회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칼로리니 뭐니 고민할 필요 없는 회라는 것 그리고 다행히 맘에 드는 횟집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다리는 동안 기분은 좋아진다.


눈을 감고 조금 지나면 그제야 머릿속에 가득했던 것들이 손끝으로 발끝으로 조금씩 퍼져나가 몸 밖으로 배출되는 듯하다. 무뎌졌던 몸의 감각들이 되살아 난다. 뻐근한 뒷 목, 욱신거리는 어깨, 불편한 몸이 구석구석 느껴지지만 반대로 머리는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는 듯 아닌듯한 상태로 한참을 누워있다 보면 슬슬 배가 고파온다. "띵동".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음식이 도착했다.


머리도 배도 적당히 비워졌고 맛있게 먹을 준비가 됐다. 위스키 한 잔의 유혹이 강하지만 알코올과는 상극인 약 때문에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꽁꽁 쌓인 봉지를 열심히 풀어 늘어놓고 한 점을 집어 먹는다. 아! 역시 일요일엔 광어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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