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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라키 Apr 18. 2021

충분한 하루

느지막이 일어난다. 가볍게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고 창문을 열어 환기도 시켜준다. 밀린 빨래를 몽땅 부어 세탁기를 돌려놓고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한다. 집에서 먼지들을 덜어내고 흩어진 아이들을 제자리로 돌려준 뒤 마무리로 설거지까지. 그러고 나서 씻고 나오면 딱 맞는 시간에 세탁기가 끝을 알리는 소리를 울려댄다. 건조기가 있으면 참 좋겠다 싶은 생각을 뒤로하고 빨래를 탈탈 털어 가지런히 널어놓는다. 그러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잠시 동안 마음의 여유를 느낀다.


천천히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간다. 딱히 정해둔 시간 없이 호수를 따라 걷는다. 저마다의 속도로 걸어가는 사람들 구경도 재미나고 길 옆의 나무와 꽃들도 눈에 담아둔다. 가끔은 멈춰서 호수를 내려다 보기도 하고 고개를 들어 온통 유리로 덮어진 건물에 비친 하늘도 한 번씩 살펴본다. 찬찬히 한 바뀌 돌고 나면 같은 자리에 또 다른 풍경들이 기다린다. 계속 걷는다. 그렇게 적당히 힘들 만큼 걷다가 천천히 집으로 돌아온다. 


책상에 앉아 미뤄뒀던 책을 집어 들거나 방송을 틀어본다.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불안함과 욕심은 잠시 내려놓는다. 벌써 봄이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또 하면서 오늘 그리고 지금을 충분히 느낀다. 오늘의 날씨, 오늘의 기분, 오늘의 메뉴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본다. 창문을 열어본다. 아직은 쌀쌀한 바람과 주변에서 들리는 음악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 건물 사이로 내려가고 있는 태양과 그 옆으로 우뚝 솓아있는 타워의 꼭대기, 그 앞으로 날아가는 새 한 마리까지, 매일 같고 매일 다른 순간들.


정신없었던 한 주를 잠시 잊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만을 충분히 느끼는 동안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본다. 완벽한 것보다 빨리 가는 것보다 지금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것은 충분함이 아닐까.

The Missing Piece.  -Shel Silv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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