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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라키 Mar 01. 2021

떨어질 때까지

매달리러 갑니다.

거리두기가 2단계로 내려가고 기다리던 클라이밍 강습도 다시 시작됐다. 날 좋은 토요일, 오랜만에 암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어색했던 홀드는 금세 다시 익숙해졌지만 사라진 근력은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꾸준함의 중요성을 한 번 더 깨닫고 다시 벽에 매달린다.

주말마다 매달리는 암장의 모습. 왼쪽에 큼지막한 홀드들이 붙어있는 곳이 볼더링 벽, 촘촘하게 보이는 벽이 지구력벽이다.

클라이밍에는 여러 종목이 있지만 조건상 보통의 실내 암장들은 볼더링과 트레이닝을 위한 지구력 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볼더링은 순간적인 힘과 기술을 요하기 때문에 짧게 끝나는 대신 액티브하다. 거꾸로 매달리고 뛰고 하는 동작들은 보고 있으면 현란하기까지 해서 인스타용으로 아주 적합(?)하다.(그래서인지 인스타그램에 클라이밍을 검색해서 나오는 결과의 대부분이 볼더링이다.)


지구력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말 그대로 지구력을 위한 훈련에 가깝다. 힘을 잔뜩 써서라도 완등을 하면 성공할 수 있는 볼더링과 다르게 지구력은 오래가야 하기 때문에 한 구간에서 힘을 많이 써버리면 완등은 어려워진다. 만약 한 번 떨어지면 다시 그만큼을 다시 가야 해서 가능한 오래 매달려 있을 때 끝까지 가는 게 좋다. 물론 한 번에 완등을 할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가끔씩은 힘이 부치는 순간이 있다.


이 때는 매달린 채로 잠시 쉬어가야 한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몇 초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양팔을 번갈아 가며 매달려 있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을 수 있겠지만 벽에 매달려 본 사람이라면 안다. 매달린 상태에서 그 잠깐의 쉼, 한 번의 호흡이 떨어지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물론 그럼에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사실 쉽게 완등이 되는 것보단 조금 어려운 난이도에서 매달리는 게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런 경우엔 거의 중간에 떨어진다. 이럴 땐 어떻게 떨어지는지도 중요하다. 힘이 좀 들어서 안 되겠다 싶어 금방 내려오는 사람은 항상 같은 자리에서 고전하고 진전은 잘 없다. 떨어지더라도 이왕이면 홀드 하나 더 잡아보고 한 발 더 내딛다 보면 다음번에는 조금은 더 쉽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당당히 탑을 잡고 있는 순간이 온다.


보통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지만, 따지고 보면 모든 운동이 비슷할 것 같다. 클라이밍도 마찬가지다. 보기에 화려하고 멋있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눈에 띄지도 않고 재미없는 기본기와 지구력을 기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오래가기 위해서는 적당한 완급조절이 필요하다. 힘이 부칠 때는 무리하지 않고 아주 잠깐이라도 한 숨 쉬어 가는 휴식이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어쩔 수 없이 떨어지더라도 매달려서 했던 부단한 노력들은 결국 다시 매달릴 수 있는 힘과 용기가 되고, 다시 떨어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무엇보다 정해진 답이 없다. 시작과 끝만 있을 뿐 어떻게 가야 하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저 혼자 매달려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


오늘도 강습이 끝나고 지친 상태로 다시 벽에 매달린다. 한 발 한 발 천천히 옮겨본다. 금세 숨이 차고 팔이 저려 오지만 한 숨 내쉬고 다시 내딛는다. 결국엔 힘이 빠져 떨어지지만 다시 또 매달린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안 되겠다 싶으면 깔끔히 포기하고 마무리한다. 하지만 좌절감 따위는 들지 않는다. 힘들었던 만큼 다음 주엔 더 강해져 있을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다음 주도, 그다음 주도 또 어김없이 매달리러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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