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더라키 May 23. 2021

일요일의 빨래

주말이면 어김없이 빨래를 한다. 이번 주말처럼 볕이 따땃하게 드는 날에는 빨래를 하는 마음이 왜인지 모르게 가볍기도 하다. 물론 평일에도 중간중간 운동복을 위해 세탁기를 돌리긴 하지만, 세탁 바구니에 쌓여있는 빨래들은 주말이 되어서야 세탁기 속으로 들어간다. 정석대로라면 종류별로 깔 별로 분류하고 나눠서 돌려야 하겠지마는 언제나 어김없이 한 번에 몽땅 부어 넣는다. 물론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별 걱정이 없다. 10년이 넘는 자취생활에서 나오는, 소위 짬바 덕분에 대충 쓱 훑어도 견적이 나온달까.


하지만 자취를 처음 시작했던 때에는 어설펐던 것도 사실이다. 생각 없이 세탁기에 넣었다가 비싸게 주고 산 옷이 줄어버리기도 하고, 색이 진한 옷을 같이 넣고 돌렸다가 흰 옷들이 모두 물들어 버려 못 입게 되어 버렸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특히 오래간만에 청바지를 빨아야겠다며 마음먹고 색이 진한 청바지를 같이 돌리고 나서, 아차 싶을 때면 이미 옷들은 모두 멍든 것처럼 퍼렇게 변해있었다. 눈물을 머금고 깨끗이 빨아진 옷들을 말린 뒤 그대로 걷어서 의류 수거함으로 향하곤 했다.


허탈한 마음으로 망가진 옷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끔 그런 의문을 가지곤 했다. 난 물들인 옷과 물들어진 옷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그러고는 아마 대부분은 물들어진 쪽에 가깝지 않을까 하고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그 시절엔 더욱더 튀는 것보다는 묻어가는 쪽이 항상 맘이 편했다. 명확한 호불호가 딱히 없었고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에 좋은 게 좋았고, 사실 생각이 있어도 딱히 내세우거나 주장하지 않는 '답답이'였다. 그 대신 얻은 것이 있다면 좋아 보이는 것들을 쉽게 받아들이는 능력이 생겼달까. 이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도 나름의 장점이 되기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방식에 좋아 보이는 것들은 눈치껏 보고 따라 배워서 그대로 써먹을 수 있었다.(일명 빨대 꽂기라고 부르곤 했다.)


지금은 어떨까. 나이도 들고 경력도 경험도 쌓이다 보니 나름의 주관도 생기고 아는 것도 좀 생겼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나도 모르게 물들이려는 옷이 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진하고 빳빳한 새 옷의 느낌은 언제나 좋다. 그래서 어릴 땐 새 옷은 무조건 한 번씩 입고 빨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다른 옷들과 함께 뒤섞이는 순간이 오면 좋았던 그것들은 걱정거리로 변한다. 진한 것들은 결국엔 다른 옷들을 물들이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스스로의 뚜렷한 주관이나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살아가는데 중요하고 좋은 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이 나를 넘어서 원하지 않는 곳에서 물들이기 시작하면 문제가 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옷이야 진하지 않으면 물들게 되고, 물들면 버리고 새로 사면 된다지만 관계라는 것은 거부 반응이 있을 수밖에 없고 생각처럼 쉽게 끊어낼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지금도 부끄러워지는 몇몇 순간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진다.


생각해보면 새 옷의 느낌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자주 찾는 건 오래 입어서 물도 좀 빠지고 빳빳함도 적당히 사라진 편안한 옷이다. 사람도 그렇다. 의견이 너무 강하고 굽어지지 않는 사람보다는 소신이 있으면서도 적당히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오래 하고 함께 하기 좋다. 선이 적당히 넓으면서도 낮은 사람이랄까(선에 관한 이야기: https://brunch.co.kr/@nukeguys/26).


빨래를 하다가 문득 들었던 생각을 주저리 늘어놓다 보니 정리가 어렵다. 급히 마무리를 해보자면, 만나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필요성은 그때그때 다르겠다마는 어쨌든 이왕이면 너무 물들기 쉽지도 않은, 그렇다고 너무 진하게 물들이지도 않는 적당히 물 빠져 편안한 그런 옷 같은 사람이 되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