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위어 우주 3부작 <프로젝트헤일메리>
얼마만 인지 모르겠지만 모처럼만에 긴 휴가를 보내게 됐다. 완등 후의 휴식보다는 매달린 채 잠시 호흡을 고르기 위해 쉬어가는 느낌이라 긴장은 계속 유지하고 있긴 했지만(비유가 클라이밍이라 이상한가?), 여하튼 간만의 여유를 함께 하기 위한 책을 하나 골랐다. 바로 그 유명한 앤디 위어 우주 3부작의 마지막 작품 <프로젝트 헤일메리>다.
작년부터 책 읽기를 다시 시작하고 나서도 소설은 잘 읽지 않았다. 이유는 딱히 없다. 그저 끌리는 대로 읽었고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더 손이 갔을 뿐. 아마 글쓰기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러다 최근 우연히 책 얘기를 하던 중 추천을 받았고 마침 오랜만에 열어 본 'Egg Break'의 행신소에서도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소개가 되어 있었다. 이쯤 되면 한 번 봐야지 하면서도 앤디 위어의 이전 책들은 읽지를 않았고 영화로 봤던 마션은 중간의 내용이 기억에 없었기 때문에(화성에 혼자 남아서 뭘 하고 있었는데 눈 뜨니 구출되어 있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고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평범(?)하다. 알 수 없는 외계 미생물 '아스트로파지'로 인해 태양은 점점 에너지를 잃어가고 당연하게도 이는 지구에 엄청난 위협이 된다. 역시나 똑똑한 지구의 과학자들은 미생물의 습격에도 멀쩡한 행성 '40에리다니'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아주 먼 여행을 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프로젝트는 인류 최후의 방안[1]인 셈이다.
어찌 보면 뻔한 지구의 멸망, 그리고 우주와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지만 역시나 앤디 위어답게 정교한 과학적 사실들과 물리 법칙들을 사용했다. 물론 대부분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사실적으로 느껴졌을지 모르겠다.(어차피 혼자 읽는 거 그냥 아는 척하면서 넘어갔다.) '그레이스'와 또 다른 주인공인 다리가 5개 달린 거미 모습을 한 외계인 '로키'와의 만남. 서로 모습도 방식도 다르지만 결국 소통의 방법을 찾고 결국 대화를 이어가는 과정은 마치 <컨택트>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둘의 대화를 통해 어떻게 서로가 존재할 수 있으며 만날 수 있었는지부터 시작해 문제를 해결의 과정을 과학적 사실과 가설들에 기반을 둔 앤디 위어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책은 프로젝트의 시작이 된 지구의 이야기와 이 둘의 이야기를 적절히 섞어가면서 들려주는데 이것도 계속해서 흥미를 가지고 보는데 한몫을 하게 하는 것 같다. 프로젝트의 시작이 된 계기와 이에 참가하게 된 사람들. 특히나 프로젝트를 이끄는 무려 지구의 리더 '스트라트'라는 캐릭터를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책으로는 700페이지나 되는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오히려 긴 휴일을 보내기에는 너무나 적당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많은 내용을 적지는 못하지만 분명 재밌다!)
라이언 고슬링이 제작과 주연을 맡아 영화화도 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라이언 고슬링이 상상했던 그레이스의 모습과는 이질감이 살짝 느껴지긴 하지만, 이렇게나 많은 내용들과 특히나 생긴 것과는 다르게 정감 갔던 로키의 모습 어떻게 담아낼지가 벌써부터 기대가 되기도 한다. 오랜만에 읽은 소설에 앤디 위어가 더해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의 기대보다는 훨씬 더 재미나게 읽은 것 같다.(읽으면서 인간의 상상력에 대해서도 생각을 한 번 해보기도 했다.) 혹시나 다음으로 읽을 책을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선택해보기를 추천한다.
[1] 헤일메리는 미식축구 용어로 경기 막바지에 터치다운 한 방을 노리는 전술을 의미한다. 미국 속어로는 이판사판으로 던져보는 최후의 수단을 뜻하기도 한다.(출처: 나무위키)
미식축구의 헤일메리는 보통의 전술과 다르게 쿼터백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앞만 보고 달린다. 그리고 엔드 라인에 도달할 때까지 쿼터백은 홀로 버텨낸 후 정확히 공을 던져야 한다. 지구를 구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우주를 홀로 버텨내며 지구에 비틀스를 무사히 보내야만 하는 목적을 가진 그레이스를 이런 상황에 비유한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