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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라키 Jun 13. 2021

토요일의 대화

올해 서른이 된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다.


"서른다섯 살은 어떤 느낌이에요?"


서른이 되어서도 아직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고,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도 들고, 점점 더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되겠더라 하는 등등의 생각이 든다면서 함께 물어왔다. 아마 서른이 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또 다가올 서른다섯이 궁금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이 나이쯤이 되면 그런 고민이 말끔히 사라지기를 기대했을 수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 해줄 말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나의 서른과 비교해 보자면 서른다섯에는 시간이 조금 더 빨리 간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었다. 삼십대로 넘어가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청춘이 끝나고 뭔가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은 서른이지만 나의 서른은 다른 나이와 별반 다르지 않게 지나갔다. 물론 그런 고민들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조금 더 일찍 시작했을 뿐.


어쨌든 난 그저 많은 사람들이 그런 고민을 하고 또 그렇게 계속하면서 살아가는 게 인생이지 않을까 하는 꼰대스러운 말만 몇 마디 답으로 내어놓고 대화를 이어갔다.




최근에 회사 책꽂이에 꽂아두고 가끔씩 다시 읽는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이라는 그림책이 한 권 있다. 보통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성공이란 무엇인가?' 하는 등의 어려운 책에나 나올 것 같은 질문의 답을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의 우정을 통해서 이야기한다. 가볍게 펴서 금방 읽을 수 있는 얇은 그림책이지만 생각보다 그 과정에서 위안도 많이 얻고 덮고 나면 여운도 꽤나 오랫동안 남는 책이다.


"네 컵은 반이 빈 거니, 반이 찬 거니?" 두더지가 물었어요.

"난 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은데." 소년이 말했습니다.


"난 아주 작아". 두더지가 말했어요.
"그러네." 소년이 말했지요.
"그렇지만 네가 이 세상에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야."


"네가 했던 말 중 가장 용감했던 말은 뭐니?" 소년이 물었어요.

"'도와줘'라는 말." 말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평범한지 네가 속속들이 알게 될까 봐 때로는 걱정이 돼." 소년이 말했습니다.

"사랑은 네가 특별하길 요구하지 않아." 두더지가 말했어요.


"시간을 낭비하는 가장 쓸데없는 일이 뭐라고 생각하니?"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일." 두더지가 대답했습니다.


"넌 성공이 뭐라고 생각하니?" 소년이 물었습니다.

"사랑하는 것." 두더지가 대답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에게 질문을 한 상대는 지금 어떤 느낌일까, 오래전 나를 떠올려봤다. 기대했던 나이의 내 모습과 실제 그 나이가 된 내 모습의 괴리에서 오는 왠지 모를 허탈이나 쓸쓸함. 나이가 들면 뭔가 잘 알 것 같지만 점점 모르는 게 더 많아지는 것 같은 허무함. 그런 감정들이 쌓이면서 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이런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나도 했던 고민들이고, 예전 같았으면 뭔가 깨달은 척 주절주절 많은 말들을 했겠지만 이제는 그런 말조차 아끼게 된다. 지금 내 생각이 답도 아닐뿐더러 고민이 같다고 답이 같지도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고민의 시간을 통해 성장하고, 답에도 조금은 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은 분명히 있다.


다음에 언젠가 또 그런 대화를 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책 선물을 한 권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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