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으로 주문한 책의 배송이 늦어져 그 사이 읽을 책을 살 겸 서점에 들렀다. 새로운 책들이 보여 살펴보다 눈에 띄는 책이 하나 있어 집어 들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감명 있게 봤던 '무브 투 헤븐'의 모티브가 된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이었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을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작가는 오랜 기간 동안 보아온 많은 사람들의 뒷모습과 남겨진 것들을 정리하면서 깨달은 삶의 의미를 에세이로 정리했다. 읽다 보니 마치 한 편의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내용들이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이왕이면 모두가 원할 것 같은 평온한 뒷모습도 분명 있었지만, 아무도 슬퍼하지 않아서 더 슬프고 세상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홀로 떠나간 그런 쓸쓸한 뒷모습들도 참으로 많았다. 어떤 이야기들은 읽고 나서 책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를 시간을 필요로 하기도 했다.
...
아들은 동생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동생이 안에 든 것을 꺼냈다. 이천오백만 원짜리 수표였다. 그리고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매의 사진. 고인이 얼마나 자주 만지작거렸던지 손때가 묻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아들은 털썩 주저 앉더니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눈물만 흘리던 딸도 소리 내어 울었다.
주인 할아버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식들이 발견하기 쉬우라고 수의 버선에다가 넣어놨나보구만... 이 노인네가 처음에도 그랬어. 웬 할머니가 혼자 집을 보러 왔더라고. 차림새도 깨끗하고 곱게 늙은 할머니였지. 집 보러 온 날 바로 계약을 했어. 며칠 뒤 이사 들어온 날 이사 잘했나 들여다보러 내려갔지. 그때 할머니가 조용히 그러더라고.
'할아버지, 내가 나이도 있고 여기서 살다보면 저세상에 갈 수도 있는데... 나 여기서 죽어도 돼요?'
우리 같은 늙은이는 다들 그렇거든. 이제나 죽을까, 저제나 죽을까, 자다가 조용히 죽어야 할 텐데, 그러잖아. 그래서 별 뜻 없이 괜찮다고 했지. 그런데 이렇게 빨리 죽을 줄 누가 알았누..."
책의 글자들은 어렵지 않게 읽혀 내려갔지만 아무래도 주제가 주제인 만큼 읽을수록 마음은 점점 더 묵직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내용들을 천천히 다시 곱씹어 봤다. 작가는 직업의 특성상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걸 많이 보았고, 경험하고 느낀 것이 많기에 아는 만큼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아마 책을 통해서 전달하려는 이야기도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간접적으로나마 죽음과 그 뒤에 남겨진 모습들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지나온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것.
"죽고 싶다는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 말은 다시 거꾸로 뒤집으면 잘살고 싶다는 거고, 그러니까 우리는 죽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잘살고 싶다고 말해야 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아야 하는 건, 생명(生命)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기 때문이야"
글을 정리하면서 문득 우리가 떠난 뒤 남겨진 것들이 보여주는 것은 죽음 그 순간이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즉 우리의 삶 자체를 함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봤다. 역시나 난 아직도 죽기는 싫지만, 언젠가 그때가 온다면 그 뒷모습은 너무 슬프지도 외롭지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잠깐 가져봤다.
가볍지 않은 내용이다 보니 쉽사리 추천은 못하겠지만 한 번쯤 읽어보면서 삶의 의미를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책의 마지막 글로 마무리를 해 본다.
우리의 짧은 안부 인사, 따뜻한 말 한마디가 소중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에게 정말로 남는 것은 누군가를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 오직 그것 하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