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35일 차]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대자연의 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by NUL BOM

백수 34일 차였던 어제는 여러 집안일을 하느라 정해놓은 루틴 중에서 극히 일부만 지킬 수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하고 지나가야 하는 집안일들인지라 하루종일 걸릴만했다. (그저 루틴을 지키지 못한 합리화를 하기 위함이 아닌 나름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것) 모든 것이 막 티가 나는 작업은 아니어도 내가 뭘 했는지 아는 입장에서는 뿌듯한 날이었다. 다만 그중에서 정말 후회되는 일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패브릭 소파를 닦겠다며 새로 구매한 새파란 극세사 타월을 사용하는 바람에 소파가 어느 순간 퍼렇게 물드는지도 모르고 집중을 한 나머지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는 사고를 친 것이다. 뒤늦게 색이 번지지 않을 것 같은 타월로 바꿔서 이를 씻겨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고 그래도 닦아내면 낼수록 조금은 옅어지는 것 같다며 남편이 이를 위로해 주었으나 내 눈에는 시퍼런 그라데이션으로 물든 소파의 딱 그 부분만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며 열심히 검색 끝에 (마음의 위안 삼아) 습식 청소기까지 주문하고는 일단 마음을 더 쓰지 않기로 한 채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늘 오전에 이른 시간부터 예정되어 있던 바깥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때마침 습식 청소기가 도착했고 곧바로 어제에 이어 소파와의 씨름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조만간 시작될 것 같던 대자연의 날이 찾아왔다.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대자연의 날은 사람을 참 무력하게 만든다. 복통, 소화불량, 설사, 피로, 실제로도 몸이 무거워지는 불쾌함, 예민, 짜증, 번거로움 등등의 안 좋은 것들로만 가득 채워지는 대자연의 날. 나는 당분간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소파와의 씨름을 어느 정도하고 나서야 그날이 왔음을 체감하듯 아무것도 하기가 싫고 통증이 심해져 잠시 침대에서 햇볕을 받으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는 깨서 다시금 소파와 씨름을 한 기억이 있다.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거 보면 오늘 참 한 것도 없이 정신없었다.) 이쯤이면 소파의 이염을 제거하는 것은 단 한 번에 해결될 일은 아니고 완전히 아니었던 상태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고 포기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질 무렵, 날도 어둑어둑해지는 게 청소기를 더 가동하기엔 민폐라는 생각이 들어 '오늘은 여기까지'라며 단념하였다.


무언가 꽂히면 액션을 하는 것은 참 바람직하지만 평상시 꼬리에 꼬리를 물듯 끊임없이 하는 생각을, 액션을 취하기 바로 직전에 단 한 번이라도 더 하는 신중함이 나는 참 부족하다. 때로는 사용 설명서를 정독하는 남편을 못 견뎌하기까지 하는데, 못마땅해할 것이 아니라 배워야 할 점이라 생각하고 본받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후회할 일을 지금보다는 덜 만들고 몸과 마음이 고생하거나 쓸데없는 비용을 지출하는 바보 같은 일이 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일어난 상황에서는 후회하기보다는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는 자세는 좋으나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 신경을 그 부분에 할애하며 고통받지는 않았으면 한다. 남편이 어제도 옆에서 끊임없이 얘기해 주듯 '나는 할 만큼 한 것이다.'. 어느 정도 했다면 조금은 내려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 쉽진 않겠지만.


해가 지고 있는 상황이 만들어준 소파에 대한 단념은 또다시 나를 대자연의 늪에 빠뜨렸다.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이사한 뒤로 '한 번 쳐봐야지' 하고는 헤드셋까지 구매해 놓고 건들지도 않던 전자키보드로 이것저것 여러 곡들을 조금씩 연주해보기도 하고, 하염없이 TV 리모컨, 휴대폰 화면을 만져가며 무념무상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침대에 누워 잠이나 자보다며 잠을 청하려는데 통증 때문에 잠에 들기조차 어려운 상태란 것을 느끼고는 약을 먹고자 박차고 일어났다. (원래는 대자연의 날 1-2일 차에는 약을 적어도 3번은 먹는데 오늘은 소파 덕분인지 한 번도 약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는 따뜻한 물에 샤워라도 해야겠다며 샤워를 하고는 이전에 찾아서 따라 하던 생리기간에 도움이 되는 요가를 찾아서 30여 분간 따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딱 약 기운이 돌만한 시간이 된 것일까? 아니면 따뜻하게 샤워를 한 덕분인가? 아니면 생리 기간에 도움이 되는 요가를 하며 내 호흡에, 내 몸에 집중을 하는 시간이 효과를 발휘한 걸까? 오늘 하루종일 나를 다운시키고 기분 나쁘게 만들던 대자연의 날로부터 마치 해방이라도 된 듯 몸도 마음도 말끔한 상태가 되어 마법과도 같이 이렇게 나를 키보드 앞으로 앉혔다. (원래는 잠이나 자야겠다며 시작된 몸부림이었는데 잠을 자기엔 너무 아까운 상태가 된 것이다.)


10세가 되던 해부터 지금까지 거의 25년의 세월을 매 달 겪어오는 대자연의 날인데도 불구하고 그 고통이 극에 달하는 1-2일 차에 내 마음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날이 많지는 않았기 때문에 최근처럼 나에게 집중할 기회조차 없었다. 나는 어디 가서 진료를 볼 때 '생리통이 심한 편이에요. 늘 약을 3번 이상은 먹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그 고통이 심한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의 경험으로 봤을 때 정확하게는 내가 그 기간을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기도 했거니와 실제로 적용할만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오늘따라한 요가 영상에서 강사가 '지금 이 기간을 고통의 시간으로 괴로워하지만 말고 고통을 딛고 이겨내는 법을 알아가는 시간으로 생각해 보세요.'라고 했다. 따지고 보면 대자연의 날이 끊이지 않고 지속되는 것은 나에게 건강한 삶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별다른 이유 없이 찾아오지 않으면 그 누구보다 애타게 기다릴 날인 것이다. 이제는 그 순간에 다른 업무에 밀려 나에게 집중하지 못할 일은 당분간은 없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괴로운 내 몸에 집중하고, 고통에 무너져서 무력한 하루를 보낼 것이 아니라 고통을 다스리는 활동을 탐색하고 시행해 보는 작업을 지속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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