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36일 차] 우울해서 빵을 샀어

글래머루틴을 실천하는 로맨틱한 일상이 모두에게 깃들기를

by NUL BOM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어 널리 퍼진 MBTI 중 T와 F를 판별용 멘트, "우울해서 빵을 샀어."만 생각하고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나는 매우 F스럽지만만 이 멘트만큼은 T스러운 답변, 예를 들면 “그럴 때 맛있는 빵이 위로가 될 수 있지. 어떤 빵 샀어?”도 마음에 들더라. 책을 읽다 보니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이 책은 MBTI와는 전~혀 무관한 내용이었다. 굳이 MBTI적인 요소를 꼽자면 F를 자극할만한 내용이 많은 감성 가득 에세이였다. 일상에서 로맨틱함을 소소하게 찾아가는 방법을 소개해 두었기 때문이다.


'로맨스' '로맨틱함'을 떠올리면 뭔가 이성을 향한, 특별하고 화려한 것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다. 책을 읽다 보니 나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지만 남편이 매우 좋아라 하는 일상의 행복추구 두 가지 행동이 이 책에 로맨틱함을 실천하는 방법들 중 일부로 소개되어 있어 남편에게 "알고 보니 당신, 로맨티스트였네."라고 갑작스레 말을 건넸다. 그랬더니 세상 그 어떤 때보다 환하게 웃으면서 보이는 남편의 반응, "응? 내가? 하긴 내가 당신한테 습관처럼 몸에 배어있는 게 로맨틱함이지."라며 능청스럽게 대답을 이어갔다. "응? 아니. 그런 거 말고, 당신 스스로를 위한 로맨틱함."이라고 힌트를 덧붙이며 어떤 행동이 로맨틱한 행동일지 스스로 맞춰보게끔 했으나 끝내 그는 답을 맞히지 못했다.


남편은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한 가지 다짐한 게 있다고 한다. 주말 혹은 휴일(교대 근무 특성상 꼭 주말에 쉬진 않는다)을 맞이하기 전 날, 그러니깐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날 밤, 욕조에서 거품 목욕을 꼭 하기로 한 것이다.

그의 로맨틱함을 위한 나의 선물

그의 빠른 실천으로 몇 년째 묵혀두던 입욕제는 이사오자마자 동이 났고, 입욕제를 더 사줄까란 말에 "아니, 그냥 바디워시 몇 방울 뿌려 넣어도 충분해. 괜찮아."라며 행복하게 거품목욕을 즐겼다. 그런 그에게 욕조 덮개?라는 게 있길래 선물해 주었다. 조금이라도 그 따뜻함을 오래 즐기라고. 그가 짧지만 굵게 거품목욕이라는 행복을 즐기고 나오면 lush에서 마사지를 받은 후에 받은 마사지바를 이용해 나름의 보디오일링?을 한다. 거품 목욕과 보디오일링, 두 가지는 나에게도 적극 권한 바 있지만 나는 "굳이... 다음에 할게."라며 한 배를 타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책에 크게 두 챕터로 거품목욕과 보디오일링이 소개, 거품 목욕의 팁으로는 욕조에 들어가기 전 몸에 가볍게 향수를 뿌리거나 보디 오일을 바르는 것이 만족감을 더할 수 있고, 입욕제와 함께 향수 자체를 몇 방울 물에 뿌리는 것도 좋다고 적혀 있더라. 보디오일링의 경우 따뜻하고 향기로운 오일이 몸을 이완시키며 피부를 감싸 안는 느낌을 주어 신체의 감각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고 한다. 이를 남편에게 말해주자 그는 "아 그런 의미의 로맨티스트였어? 난 또."라며 미소 지었다.


'로맨틱함을 일상에서 추구하는 것, 일상을 좀 더 특별하게 만듦으로 행복해지는 것', 이를 위한 소소한 방법들이 소개된 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지금 당장이라도 바로 실천할 수 있는 행복의 방법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싶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중에서 꼭 실행으로 옮기고 싶은 것들을 꼽자면,

백수 생활 이후 가장 많은 시간을 내 몸에 걸치고 있는 실내 일상복을 좀 더 다양하게 구매하여 날마다 다르게 착용함으로써 그날의 기분, 의도를 반영해보고 싶다.

겨울을 싫어하진 않지만 여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가끔은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갈망이 있을 때가 있다. 근처 실내 식물원에 들러 온실 속 향긋한 흙 내음, 살아 숨 쉬는 식물들의 생기를 느껴본다면 따뜻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또한 가까운 곳에서 자연을 느끼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설치할 수 있는 야외 의자를 하나 펼쳐두고

그 의자에 몸을 온전히 맡긴 상태로 자연과 한 몸이 되는 느낌을 갖고 싶다.

지난번 그 시기가 조금 늦어 제주도에서 귤 따기 체험을 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이 책에서 일컫길 지상 최대의 보물 찾기라 할 수 있는 자연에서 열매를 수확하는 체험, 그 체험을 통해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지고 싶다.

생각보다 서로의 속 얘기를 나누는 대화가 그리 많지는 않은 편인 우리 부부, 가끔은 침대에서만 나눌 수 있는 진솔한 대화를 '필로우 토크'로 나누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평소 꽃을 좋아하면서도 꽃말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플로리오그래피는 꽃말을 전하는 예술적인 언어 또는 은밀한 소통법으로 이를 통해 꽃을 통한 감상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보고 싶어졌다.

로맨스의 완벽한 상징이자 그 열과 에너지로 생명을 불어넣고 온기와 아늑함으로 위안을 주는 불, 쉽게 구비할 수 있는 타닥타닥 모닥불 효과 인테리어를 찾아보고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 배치해보고 싶다.

꼭 특별한 날이 아닐지라도, 그래서 전혀 꾸밈이 없을지라도 소소한 일상, 함께한 사람들에 대한 사진을 더 많이 남겨보련다. 사진을 통해 기록하고 싶은 순간들을 남겨둔다면 오로지 단 하나의 찰나만 간직한 귀한 것인 사진으로 하여금 그때의 감정과 느낌을 되살릴 수 있다.

시간과 비용을 핑계로 꽤 많이 멀어져 버린 문화공연 관람. 독서나 영화감상 등으로 대체해도 충분하다며 뒤로 미뤄왔지만, 책이나 영화, 드라마처럼 각색되지 않은 채 그 순간순간이 그대로 펼쳐지는 라이브공연의 경우 그 공간에 처음 모인 사람들이 하나로 모여 순간이 예술이 되는 마법을 선사한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라이브 무대를 관람하는 관객이 되어 온 감각을 다해 무대에 집중하고 무대와 다른 관람객득과 하나가 되어 표현의 욕구를 마음껏 배설? 하고 싶다.

고요한 저녁 시간을 좋아하는 올빼미형인 나에게는 백수가 된 이후로도 쉽지 않은 것이 생활 패턴 돌리기이다. 물론 내가 최상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좋겠지만 집중력만을 놓고 보면 오전 시간이 나에게는 맞는 것 같더라. (저녁은 정신은 맑게 깨어있으나 지나치게 감성적이 되면서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내년, 시간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길고 긴 싸움을 하게 될 텐데 이를 앞두고라도 암브로시아의 시간(해뜨기 2시간 30분 전, 해가 지평선에서 60도 각도로 떠오르기 시작하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생활 패턴을 갖고 싶다.


그리고 이미 실천하던 것이 있다면,

한 주에 한 번은 단지 내 도서관을 방문하여 읽은 책을 반납하고, 몇 안 되는 일반책 서재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이번 한 주는 어떤 내용으로 나를 채워볼까란 기대를 가지고 오롯이 나 혼자 그 공간에 있는 것처럼 도서관 속 책들에 대한 탐색을 시작한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시간이 설레고 즐겁다.

피트니스센터에서 러닝머신을 달릴 때와 다른, 야외 러닝의 특별한 매력이 있다면 날마다 바뀌는 자연, 그날의 날씨, 그 시간에 그곳에 함께 있는 사람들을 달리면서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기 위한 장소로 가는 길에서도 길을 거닐면서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데, 평소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흘려보낸 것들, 따뜻하게 내리쬐며 부서지는 햇빛, 재잘거리는 새소리, 공기 중 짙게 퍼지는 로션 냄새와 같은 주변의 세세한 부분에까지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브런치라는 공간마저도 누군가에게 나의 생각과 느낌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공개적으로 공유될 수 있도록 부추김 받는 시대, 가끔은 공개가 꺼려지는 내 마음속 이야기를 늘어놓을 공간도 필요하다. '5년 후 나에게'라는 소제가 붙은 일기를 5년 전에 구매하여 5년이 지난 올해에서야 한 바퀴를 거의 다 썼다. 앞으로 4년, 꾸준하게 이 일기를 써 나가면서 나의 기억, 생각, 감정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계속 가질 수 있기를.


또한 책을 읽고 새롭게 실천한 것이 있다면,

이 책을 읽고 난 다음날 밀려있던 전날 초벌해둔 설거지를 할 때, 듣고 싶은 라디오 채널을 틀어놓고 DJ의 멘트에 귀 기울이며, 흘러나오는 음악에 흥얼거렸다는 것이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의무 사항에서 벗어나 나에게 안락함을 주는 공간을 정성과 애정으로 가꾸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옵션을 더한 것이다.


흔히 알려진 육체적인 글래머러스함에서 벗어난, 광범위한 의미의 글래머란 상대를 사로잡고 마음을 끌어당기고 매료시키는 독특한 능력이다. 나의 삶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특별한 루틴이나 의식을 자유롭게 즐기는 행위가 '글래머 루틴'이라 할 수 있다.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글래머 루틴'을 탐색하고 실천하면서 매일매일이 특별하진 않아도 행복하고 즐거워지길. 이 글을 읽는 모두가 그럴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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