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39일 차] 나의 결혼 생활은 순항중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을 만나는 로망은 실현하지 못했지만

by NUL BOM

나에게는 몇 안 되는 모임 부류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대학교 같은 과 동기 모임이다. 나를 포함 총 5명의 친구들. 어떤 친구들에게는 우리 모임의 만남 주기가 가장 뜸하다고 하나 놀랍게도 나는 이들과의 만남 주기가 내가 드문드문 만남을 갖는 모임들 중 가장 잦은 편이다. 우리는 조금은 이를 수 있으나 2024년 송년 모임을 하자며 지난 주말 모였다.

그 모임의 한 친구가 내년 상반기에 결혼을 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는데, 이 날, 다른 한 친구도 내년 하반기에 결혼 날짜를 정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약 3년 반 전 내가 결혼을 한 이후로도 뜸 하던 우리 모임 내에서의 결혼이 올해를 시작으로 내년까지 연달아 3건이나 이어지는 것 보면 드디어 내 주변 가까운 사람들도 하나 둘 결혼을 하는 게 신기하다. (사실 우리 모임을 제외하고는 같은 과 대학 동기들이 거의 다 결혼을 하고 아이도 한 명 이상 가졌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두 친구의 내년도 결혼 소식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대화 주제가 결혼 준비, 결혼 생활 등 결혼과 관련한 것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는데 구체적인 소재로는 내가 왜 결혼 상대와 결혼을 결심했는지, 집안일의 영역은 어떻게 분리되어 있는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중의 한 친구 남편분이 워낙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시는 편이라 친구는 주방의 영역에 감히 접근하면 안 된고 날마다 오늘은 어떤 걸 먹게 될까란 기대를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절로 "우와"라는 반응이 나왔다. 돌이켜보면 나의 10대 때의 어렴풋한 로망은 '요리사? 아니 요리사는 집에서는 요리를 하기 싫어한다니깐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을 배우자로 삼아야지'였다. 로망을 실천하여 결혼 상대를 구했던 것은 아닌지라 그 로망을 실현하고 있는 친구의 결혼 생활에 감탄이 바로 나왔던 것 같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가 "결혼해서 밥은 어떻게 해 먹지? 잘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듯 나 또한 결혼 전까지 주방에는 거의 들어가질 않고, 엄마가 '오늘은 또 뭘 해야 하나'란 고심을 하면서 차렸을 식사를 마음 편히 그저 먹기만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었다. 막상 내가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오자 인터넷에서 여러 레시피들을 참고해 가며 이것저것 해 먹기 시작했고, 워낙 배달이나 외식을 하게 되면 나가는 비용이 상당한지라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어쩔 수 없는 요리하는 살림녀가 되었긴 하다만, 아직까지는 3인 이상의 대용량?으로 무언가를 차리려면 준비 과정부터 긴장하는 요리 숙맥이다. 우리 둘 다 바쁜 직장생활을 했을 당시에는 되는대로 덜 바쁜 사람이 당장 해야 하는 집안일을 해치우며 살아왔는데 당장 해야 한다는 기준이 그걸 신경 쓰는 사람 눈에 더 많이 보이게 되는 거더라. (나는 그렇게 더러운 게 신경 쓰여도 남편 눈에는 그렇지 않으면 결국 신경 쓰이는 내가 나서서 하게 된다는 의미) 게다가 마침 직주근접 면에서 훨씬 유리하고 여유 있었던 게 나였기 때문에 집안일을 하는 비율이 남편보다는 내가 더 항상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요리, 요리 준비를 위한 쇼핑 부분에서는 나중엔 온전히 내 일이 되었다고나 해야 할까. (초반 몇 번 남편이 요리를 해주면 너무 자극적인 맛에 "그냥 내가 할게"라고 나선 것이 잘못이었을까. 하하.)

그나마 다행인 건 남편은 내가 무엇을 차려주든 열심히 먹는다. 이제는 먹을 때의 반응으로 이게 정말 맛있는지, 입맛에 맞는지를 쉽게 판별 가능하지만 아무리 맛이 없거나 싫어하는 음식이라도 남기지 않고 열심히 먹어준다. 그래서 있는 재료들을 아낌없이 활용하며 새롭게 도전할 만한 요리가 없는지 찾아보고 따라 하게 되는 것 같다. 나중에 진지하게 "내가 해 준 음식들 중 별로였던 건 없었어? 솔직하게 코멘트해 줘. 그래야 내가 참고해서 다음에 준비하지."라고 몇 차례 묻자 "음... 솔직히 말하면 그때 그 토마토오징어볶음은 좀 많이 먹기 힘들었어."라고 대답하더라. 그때 식사를 같이 하진 못했는데 약속에 다녀오니 토마토오징어볶음이 다 비어져있어서 힘들게 먹었다고는 상상도 못 했고, 때마침 그다음 날 메뉴 계획으로 토마토오징어볶음을 염두에 두고 있었었다. 남편은 힘들지만 솔직하게 털어놓고는 그다음 날 메뉴 계획 얘기를 듣고서 "말하길 정말 잘했다."라며 환하게 웃더라.

요리를 하면서 알게 된 한 가지는 '나는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란 것이다. 그도 그런 것이 남편이 없을 때 나는 나를 위한 요리를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남편과 먹고 남은 요리가 있으면 그나마 데워먹는 식이다. 그리고 요새 백수 생활을 하면서 온전히 95% 이상은 나의 몫이 되어버린 집안 이들이 그리 즐겁지 않은 걸 보면 하루빨리 나의 두 번째 직업생활을 시작하고자 애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 집안일 얘기는 이야기의 매우 일부분으로 결혼 생활의 좋은 점, 애로사항 등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결론은 '조건이 어떠하든 그게 좋은 쪽으로 흘러갈련지, 나쁜 쪽으로 흘러갈련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더라. 그냥 그 조건 속에서 나를 포함한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결국엔 결혼이란 게 집안 대 집안의 만남이기 때문에 내가 남편의 가족들과 어떠한지, 남편이 나의 가족들과 어떠한지까지 그런대로 잘 맞아야 문제없이 잘 살아갈 수 있는 거더라. 그리고 이건 또 새로운 상황이 닥치면 언제든 달라질 수 있을 테다.'는 쪽으로 흘러갔다. 그래서 아무리 세세한 조건을 걸고 만난 사람인들 그 사람과의 결혼 생활이 100% Ideal 할 수는 없다는 것. 그때 필요한 것이 가장 가까이의 있는 내 동반자가 어떤 태도를 취하냐인데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고, 그야말로 천하무적 내 편이 되어서 요리는 잘 못하더라도 뭐든 차려놓은 것은 잘 먹고, 빠릿빠릿하게 열심히 뒷정리를 하고, 청소에 대한 민감도는 떨어져도 부탁하면 척척 열심히 하려 하고, 내가 가~장 꺼리는 집안일인 음식물쓰레기 버리기는 늘 전담마크해 주는 그런 남편이 있어서 나의 결혼 생활은 순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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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라도 남겨놓자는 취지로 찍어본 최근 해 먹은 우리의 식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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