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길로 나아가는 하나의 물방울이 될 수 있기를
최태성 선생님의 역사 강의에는 인문학이 녹아 있다. 그저 역사를 암기하는 것으로만 가르치시는 것이 아닌 역사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않고 알아야만 하는, 사실 이면의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전달하며 일깨우고자 앞장서주신다. 그래서인지 그 강의나 책을 읽다 보면 지루한 역사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역사를 마주하는 느낌이 절로 든다. 이번 신간 '다시, 역사의 쓸모'도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요즘과 같이 뭐라 할 말이 없는, 후손이 보았을 때 역사적 암흑기에 가까운 시기에 선생님의 책으로 하여금 일단 나부터가 새롭게 깨달음을 얻고 바람직한 길로 나아가는 하나의 물방울이 되어보고자 한다.
평범한 내가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
대단한 역사적 사건에 이름을 남긴 사람에 비해 나의 힘과 역할은 얼핏 별 볼 일 없어 보일 때가 많다.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이 작은 일이 역사의 발전 방향에 부합한다면 시대정신의 한 조각을 쥐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지나간 역사를 기억하고 앞으로 다가올 역사에 관심을 가진다면 나의 옆 사람, 또 그 옆 사람에게 분명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세상은 위인에 의해서만 좌우되지 않는다. 하나하나의 물방울이 모여 거대한 물결을 이루듯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건강한 시대정신이 결국 역사를 바꾼다. 나의 역사가 모여서 우리의 역사가 되고 그것이 곧 인류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바로 나, 우리의 행동이 곧 역사가 되는 것이다. 내 존재가 아무리 작아 보이더라도 나 역시 역사의 구성원이자 주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힘
역사에서 우연이라 회자되는 것들은 필연적으로 벌어질 일의 조건이 성숙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하나의 계기와 같다. 사라예보 사건과 샤보스키의 말실수처럼 우연을 가장한 필연에 따라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베를린 장벽의 함락과 같은 세계를 뒤흔든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도 찬찬히 뜯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필연을 찾는 작업이다. 어떤 사건이든 표면에 드러난 현상을 넘어 그 배경, 상황, 흐름, 그리고 인과관계를 읽어내는 작업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층 깊은 시선과 통찰력을 지닐 수 있고 해석 너머의 것들을 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우리의 인생도 나의 작지만 성실한 움직임으로 하여금 언제 어디서 효과를 발휘하게 될지 모른다. 우연은 준비된 자에게만 미소 짓는다는 말처럼 바라는 일을 삶의 필연으로 만들기 위한 날갯짓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사랑이 갖는 의미
흥남 철수 작전에서 정원의 230배나 되는 사람을 구출한 메러디스 빅토리호, 아프가니스탄에서 구출해 낸 우리 교민과 협력자들, 가진 것을 전부 내놓은 하와이 이주 노동자들. 책을 읽고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세상을 사랑할 새로운 이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가지기 위함이다.
진짜 이야기를 알아가는 지적 기쁨
역사적 배경 지식을 알게 되면 창작자의 의도도 이해가 되고 감동도 깊어진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문화를 향유하고 교양을 쌓으려는 인간에게 지적 유희는 큰 기쁨이 된다.
애쓰고 노력한 끝에는 결국 이룸이 있다.
한 책을 11만 3000번 읽고도 그 책의 첫 장의 첫 번째 문장을 헷갈려하던 김득신. 남보다 재능이 없다고 실망하고 남보다 가진 게 적다고 좌절하며 이 길이 맞는지 의시하고 우왕좌왕하다가 나는 안될 거라고 포기하기 마련이나 김득신은 자기의 길을 찾아 뚜벅뚜벅 흔들림 없이 걸어갔다. 남보다 머리가 나쁘다고 배움이 느리다고 기억력이 안 좋다고 스스로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평생을 쏟아부어 얻은 깨달음을 후손에게 남기는 업적을 이뤘다.
선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
영조와 혜경궁 홍씨 모두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의 바탕은 같았을지 모른다. 다만 결과는 너무 달랐다. 정조가 성군으로 역사의 길이 남은 배경에는 어머니의 특별한 가르침, 선을 행함에 있었다. 선을 행하는 왕이 되어 아버지의 한을 풀라는 것이 그녀의 양육 철학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승리 이후를 결정짓는 승자의 품격
세사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듯 승리할 때가 있으면 패배할 때도 있고 그러다가 다시 승리하기도 한다. 승리에 도취해서 도를 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미래의 나에게 또 다른 불행의 씨앗을 심는 일로서 승리의 기쁨을 맛보는 순간에도 패배한 상대의 슬픔을 살피는 자세, 패자를 완전히 굴복시키는 대신 그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태도,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역사의 경고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품격을 갖춰야 한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나의 존엄을 지키는 법
지식인의 본분을 고심한 끝에 매천야록의 집필을 마치고 조서의 선비로서 자결한 황현, 조국에서 받은 건 없으나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것이 그저 당연했던 최재형. 세상이 나에게만 가혹한 것 같고 불공평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세상을 탓하다 보면 분노가 쌓이고 패배감에 빠지게 된다. 이런 세상에서도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나의 존엄을 지킬 수 있을 것인지.' 묻고 답하다 보면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역사는 그런 선택을 한 사람들이 분명 존재했음을 알려주고 이들을 통해 '나'라는 존재가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더 괜찮은 내가 되고 있음을 느낀다.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단순한 진실
성리학이 지배했던 조서 시대를 거치기 이전까지 기록은 많지 않지만 진취적인 여인들이 많았다. 이들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철창 같은 시대의 한계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나아가려 한 그들을 통해 주체적 삶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다.
압구정의 주인 한명회는 왜 몰락했을까
한명회와 임사홍은 상상력의 부재로 하여금 주위를 돌아보거나 앞날을 생각하는 지혜가 부족했다. 역사를 안다고 해서 꼭 옳은 길만 선택할 순 있진 않지만 한명회와 임사홍을 반면교사 삼아 인생의 모습이 달라지더라도 변함없는 나를 지켜내는 절제의 품위가 중요하다고 배운다.
난공불락의 요새를 함락시킨 생각의 전환
10만 대군을 끌고 갔음에도 승리를 놓칠 뻔한 메흐메트 2세. 난관 앞에서 주저앉는 대신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서 변화를 준 결과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키게 된다. 더 방법이 없는 것 같은 막다른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변화를 모색하고 그 변화를 통해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 목표를 이뤄낸 사람들만의 특징임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유럽의 신항로 개척이 알려주는 것
당시 여러 나라가 기껏 차지한 패자의 자리를 일찍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데는 거시적인 안목이 부족해서이다. 눈앞에 이익에 급급한 나머지 지나친 탐욕에 멀리 내다보지 못한 것이다. 언제나 영원한 1등은 없다. 고로 1등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을 생각하며 1등을 거머쥐기 이전부터 끊임없이 다음을 고민해야 한다. 또한 어떤 1등이 되느냐, 1등의 의미가 무엇이냐에 대해 상기하며 자리를 지킬 단단한 밑바탕을 다지는 것도 중요하다.
얼마나 멀리까지 그릴 수 있는가
노비라는 신분을 공유한 이들에 대한 사랑이 있었던 만적, 백성들에 대한 사랑이 있었던 이지함, 우리 것에 대한 사랑이 있었던 권문해. 이들은 사랑이 있었기에 시대를 뛰어넘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영웅은 위대한 과업을 완수한 사람이 아니라 작지만 위대한 사랑으로 온 생애를 바쳐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아무나 될 순 없어도 누구나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이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시대의 막을 내리게 만드는 불공정
집단 간의 차별의 대표적인 역사 고려의 문신, 문신 사이 차별, 이로 인해 발생한 무신정변. 이러한 집단 간의 차별이 여전할 뿐 아니라 소수자를 향한 차별도 존재하고 점점 더 그 정도가 심해진다. 차별, 불공정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점점 싸이다 보면 결국 기울어진 세상은 그 무게를 견디다 못해 무너지기 마련이다. 내가 당하는 차별이 아니라고, 나에게는 불공정할 것이 없는 제도라고 눈감고 넘어간 적은 없는가.
아름다운 결과는 아름다운 과정을 보장하지 않는다.
안중근의 성공 신화 뒤에는 숨겨진 아픔이 감춰져 있다. 인간 안중근은 사실 실패와 시수를 거듭한 것이다. 성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실패를 견디는 힘을 갖고 스스로를 응원해 주길.
이완용을 만든 교육, 윤동주를 만든 교육
제대로 된 인재 하나 배출하지 못한 채 최초 관립 근대 교육기관이라는 상징성 하나만 남은 이완용이 졸업한 육영공원. 반면 수많은 민족 지도자를 배출하며 민족교육기관으로 기념되고 있는 윤동주가 졸업한 명동학교. 무엇을 성공이라 정의할 것인지, 내가 가진 부를 어디에 쓸 것인지에 관한 철학과 원칙이 먼저 세워지지 않는다면, 그런 철학과 원칙을 세우는 것을 우선으로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교육은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을 키울 위험이 높다.
자랑할 만한 역사가 있다는 것
자랑할만한 역사가 있고 그 정신을 오랜 시간 유지하는 것이야 말로 가문의 영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자랑스러운 역사의 예시를 남기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억하려 한다면 그 역사는 계속 이어지며 영광은 오래오래 유지될 수 있다. 이를 보다 보면 내 삶에도 사람들에게 오래 회자되는 자랑스러운 순간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 수 있다.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는 이유
역사는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나아간다. 정과 반의 대립하는 상호작용을 통해 대립을 넘어선 새로운 주장과 상황이 도출되는데 이를 통해 역사는 발전한다. 반의 시대에서 필연적인 갈등은 불편을 유발한다. 하지만 반의 시대가 있어야 합의 시대를 불러올 수 있다.
성공이 아닌 섬김을 실천했던 사람
우연히 따뜻한 내용의 기사나 뉴스를 접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약간 풀어지듯 역사에는 이런 다채로운 감정을 가질만한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이들 역사로 하여금 쫓기듯 살다 보니 감정이 무뎌지고 단단하게 굳어버린 마음이 풀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추사 김정희가 말년에 깨달은 행복의 정의
화려한 삶을 살았던 김정희. 그의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서야 행복을 새롭게 깨닫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가족과 함께 있는 삶이다. 원대한 목표에 사로잡혀 소박한 오늘의 행복을 외면하지 않는 것, 나의 삶은 나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 하루를 정성스럽게 사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 것. 그런 인생이야말로 행복으로 가는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