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난장이들과 함께 행복해지기
아마 내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일부를 접하게 된 건 교과서를 통해서다. 문제를 풀기 위해 이 소설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A=B라는 공식 마냥 암기했던 기억이 있다. 부끄럽게도 난장이 연작 전체를 접한 것은 이번 독서감상문을 준비하면서가 처음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작품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게 되었고 알고리즘이 이끈 곳 중 하나가 동일한 제목을 지닌 더크로스의 노래였다. ‘아주 작은 공을 가졌던 나의 아버지는 난장이, 저 하늘을 보시며 내게 말씀하셨죠. 닿을 수 없어 보여도 먼 훗날 언젠가 모두 서로 같아질 테니. 하늘 높이 오른 저 공은 꿈을 이루지도 못한 채 땅으로 돌아오겠죠. 그게 세상이니까. (중략) 절망의 반복이 언젠가 저 희망이 될 테니, 우리의 눈물이 언젠가 저 희망이란다.’ 작품을 읽으면서도 눈시울이 여러 번 붉어졌었는데 노래를 들으면서는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다.
중학교 3학년때까지 나는 스스로 무언가 알아가는 것이 더 좋다며 예체능 관련 학원은 다녔어도 공부관련 학원은 다녀본 적이 없었다. 운이 좋게도 순탄하게 전교 1등을 거머쥘 수 있었던 나의 어린시절, 전교 1등이면 무료로 더 깊이 있는 영어, 수학 공부를 할 수 있는 학원이 있다는 정보를 접했고, 6개월 이상 하루 온종일 닭장 속 닭처럼 한데 모여 공부만 하는 학원 생활을 버텨가며 비교적 학비가 싼 공립형 외고에 진학하게 되었다. 외고 진학 후 나의 세계는 더 넓어졌고 나와는 다른 배경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아마 그 때부터 내게도 ‘불평등’이라는 개념이 와 닿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도 반지하에 위치하던 집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여러 친구들을 초대하던 내게도 소리 없이 사춘기라는 게 찾아왔던 것도 같다. 학비, 학원비를 걱정해서 내린 결정은 아니었지만 학원엔 관심이 없는 척하다가 무료라는 말을 듣고 학원을 찾아갔고, 가까이에 있는 사립형 외고보다는 공립형 외고를 선택했던 점에서 정확히 말하면 고교 진학 그 이전부터 ‘불평등’이라는 개념은 엄마 아빠의 인생을 통해서라도 암묵적으로 내 안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부모님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에 대해서 자세히는 아니어도 얼핏 알게 된 시점이 언제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엄마는 아래로 여동생만 셋을 둔 장녀로, 친 자식들 보다는 주변 사람 챙기기가 더 중요했던 외할머니와 술, 담배 뿐이 모르던 외할아버지 밑에서 평생 ‘공부’에 굶주린 삶을 사셨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어린 나이에 공장에서 일하시며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공부까지 마친 엄마는 야학시절, 엄마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당시 대학생이셨던 선생님들과 현재까지도 안부를 주고받는다. 반대로 아빠는 ‘공부’엔 큰 관심이 없었으나 육 남매 중 다섯째로, 홀어머니 밑에서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여기저기 친척집을 떠돌며 자라셨다. 엄마와는 달리 정규과정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긴 했으나 당시에 엄마와 결혼을 하려면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지원한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나 학벌로나 우세한 경쟁 상대들을 뚫고 승진하는 과정이 순탄지만은 못했지만(그야말로 부조리했지만) 오직 성실함과 꾸준함으로 승부수를 걸며 5급 사무관까지 오르시곤 지난 해 자랑스럽게 정년 퇴임을 하셨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사랑, 학업 등에서 굶주림이 있던 나의 부모님은 일찍 철이 든 것 같은 내게 많이 미안해 하면서도 대견스러워하셨다. 공무원이신 아빠 외벌이에만 의존하며 어렸을 적 단칸방, 옥탑, 반 지하 등을 전전하다가 아파트로 자리를 잡기까지 엄마는 절약을 항상 염두에 두고 생활할 수밖에 없었는데, 어린시절 눈치 빠른 나는 이를 다 알았던지 뭘 먼저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말로 전해 들었을 땐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셨음에도 남 부끄럽지 않게 바르고 올곧게 살아오신 부모님을 인생의 롤모델로 삼고 살아온 것 같다. 그럼에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불공평한 세상이 원망스러웠던 적이 있었다고 조심스레 고백해본다. 부모님에 비하면 행복하고도 부족함 없는 인생을 살아왔지만, 고등학교 시절 수업 시간의 2/3를 차지하는 영어, 제2외국어 수업을 위해 다른 친구들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서 준비를 해도 따라갈 수 없었던 순간, 유럽 국가로의 수학여행뿐이 선택지가 없다는 말에 그 비용을 듣고 주저하고 있을 때 전혀 고민없이 가서 뭘 하면 좋을지를 구상하느라 행복한 친구들을 지켜보던 순간, 엄마들끼리 정보를 주고받으며 야간 자습 후에는 학교 앞에 대기 중인 엄마 차, 학원 차를 타고 내신이나 수능 준비를 위해 학원으로 향하는 친구들을 지켜보던 순간, 이외 여러 사소한 순간들이 내색하진 못했지만 자격지심, 초라함을 느끼게 했다. 이를 시작으로 대학 생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이란 울타리 없이 넓어진 나의 세계에서 불평등,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순간들은 더 다양하고 많아졌다. 무려 40년이 훨씬 더 된 이야기지만 난장이가 쏟아 올린 작은 공의 내용은 가난하여 서글펐던 우리 부모님 시대뿐 아니라 경제가 성장한 지금 내가 사는 이 시대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것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나의 성실함과 끈기, 가정환경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계시던 담임 선생님은 학기 초에 문과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간호학과로의 진로를 먼저 언급하셨다. 물론 처음엔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과는 잘 맞는 일인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취업이 잘 되는 일’이라는 점이 나의 마음을 이끌었던 것 같다. 대학에 와서 선배들로부터 많이 들은 얘기 중 하나가 “간호학과가 왜 취업이 잘 되는 것 같아? 그건 생각해봤어?”라는 질문이었다. 그 대답은 당연히 ‘많이들 그만두니까’이었다. 오로지 취업이 잘 된다는 이유만 가지고 선택한 길은 아니었으나 그 말을 듣고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9년차 간호사로 몸 담고 있는 지금도 나는 수도 없이 ‘사직’에 대한 고민을 한다. 요새는 한 직장을 퇴직까지 다니는 일이 거의 없다고는 하지만 내 성향과 가치관과 잘 맞다고 생각하여 시작한 일인데 왜 수시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참고 견뎌야 하는건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물론 간호사로 일하면서 환자를 돌볼 수 있다는 것, 특히 지금은 내가 집중하고 싶은 환자의 마음을 케어하는 곳에서 일한다는 점이 매우 만족스럽다. 그렇지만 때론 물 한 모금 먹거나 화장실에 가는 것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환자들의 식사, 수분섭취, 대소변 등을 챙기는 내 자신을 마주할 때 느끼는 부조리, 돈이 다는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데 중증도가 있는 환자들을 돌보면서도 야간 수당을 제하면 다른 일반 병원 업무와 큰 차이가 없는 월급 등, 현실적인 부분이 내가 계속 이 일을 하는게 맞는 것인가란 고민을 하게한다.
그러면서 오늘도 나는 업무 시간 앞뒤로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나의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주간이고 야간이고 규칙 없이 일하는 게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야간 근무를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야간 수당만을 바라보며, 한 달에 한 번 매우 빠르게 스쳐가는 월급날만을 고대한다. 내가 잘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돈을 벌며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는 자기 위안을 하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잃은 채 일상이 흘러간다. 일을 하면서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나의 가치관을 실현할 수 있어 만족한다지만 현실은 대한민국에서 ‘내 집 마련’이 목표인, 좀 더 나의 업무 가치가 인정받고 업무 환경과 처우가 나아지길 소망하는 일개 난장이의 불과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과거 이 작품이 처음 나왔을 때와 몇 십년이 흐른 지금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면 왜 우리는 희망고문을 하듯 이 작품을 필독서로 알고 꼭 한 번은 읽어봐야 하는건지 궁금했다. 그런 궁금증을 갖고 있던 중에 작품 중에 등장한 ‘도도새’가 문뜩 생각이 났다. 십칠세기 말까지 인도양 모리티우스 섬에 살았던 새로, 날개를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아 날개가 퇴화하고 결국 날 수가 없게 되어 모조리 잡혀 멸종 당한 도도새의 일화. 무기력하게 도도새처럼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는 일이 없도록, 불평등, 상대적 박탈감, 부조리로 때론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지만 이에 대해 씨름하면서 나를 지키고 나만의 답을 찾아 나가는 것, 이에 대해 앞장서서 용기 있게 싸우는 사람들에게 소심하게나마 힘을 실어 주는 것, 결국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극이 점점 더 벌어지며 살기 어려운 곳으로 변해가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기를 소망해보는 것이 나, 난장이가 만들 수 있는 작은 공이지 않을까 싶다.
불평등과 부조리가 난무하고 빈곤의 궁지에 몰린 사람들의 처절한 파멸이 경제적인 성장과 공존하는 아이러니한 지금 이 순간, 적어도 가진 자건, 못 가진 자건 상관없이 누구나 스스로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그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할 수 있도록 사회, 기업적인 측면에서 물질적, 복지 차원의 고려와 변화가 절실하다. 난장이를 데리러 온 우주인을 따라 혹성으로 우주 여행을 떠나지 않고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익숙한 곳에 남아 함께 지내던 난장이들과 행복해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