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UL BOM Nov 05. 2024

[독서감상문]어떻게 죽을 것인가

죽음을 앞에 둔 환자에 대한 의무

  병원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다. 병원 대부분에서는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환자를 만난다. 그러나 내가 일하는 곳, 정신과 안정병동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이곳에서는 정신적인 고통으로 삶을 끝내고 싶어 하고 실제로 충동적으로, 혹은 오랜 계획하에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시도를 하다가 가까스로 생명을 부지한 채 입원하는 환자들을 만난다. 정신적인 고통의 원인 중에는 나이가 들며 찾아오는 몸과 마음, 상황의 변화 그리고 질병 등이 있을 수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정신적 고통은 일시적일 수 있지만, 노화, 질병은 그렇지 않다고 했는데 그만큼 노화, 질병으로부터 오는 정신적 고통의 무게는 상당하다. 또한, 기대 수명의 연장으로 하여금 우리는 모두 그 고통에서 예외가 되기 어려워졌다.

  최근 정신 재활 프로그램 간호사 자격으로 정신과 개방 병동에 파견 나갔을 때 만난 한 환자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녀는 1년 전 40대의 나이로 대장암을 진단받고 수술, 항암치료의 과정을 거치며 신체 증상, 통증, 상황으로부터 오는 정신적 고통으로 정신과에 입원했었다. 이번에 다시 신체 증상, 통증이 악화하여 정기 검진을 앞두고 우울, 불안감 등이 심해지면서 정신과로 재입원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입원 중 진행한 검사에서 암의 전이 소견이 나왔다. 추가적인 검사를 거쳐 다행히 아예 손을 쓸 수 없는 단계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남편, 동생들은 하루빨리 항암치료를 시작했으면 했다. 다만 그녀는 암이 재발했다는 사실을 부정, 분노하고 우울해하며 2주 넘는 기간을 무기력하게 눈물과 함께했다. 2주가 지났을 무렵, 그녀는 “교수님께서 저한테 딱 하나 부탁하셨어요. 아무 생각하지 말고 영상 같은 거 보거나 프로그램 참여하면서 웃으라고 하시더라고요.”라며 한동안 통증, 우울, 무기력을 호소하며 참여를 꺼리던 정신 재활 프로그램에 다시 참여했다.

  암의 전이를 알기 전에 그녀는 프로그램에서 아들 이야기를 꺼내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그녀는 대장암 발병으로 치료를 하며 아들에게 늘 기운 없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여태껏 가장 속상하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부모님이 맞벌이하는 바람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텅 비어 공기마저도 싸늘했던 어릴 적 집의 기억이 싫었다. 무뚝뚝한 부모님으로부터 제대로 받아본 적 없어 어색한 포옹이었지만 그녀는 아들만큼은 있는 힘껏 꽉 안아주며 따뜻함으로 가득 채워주고자 했다. 그녀도 엄마가 처음인지라 서툴렀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후회가 남는 부분도 있다고 하나, 그녀의 진심만큼은 잘 전달되었는지 누구보다 착하고 따뜻한 마음이 갸륵한 아들이라고 했다. 아들은 아픈 엄마를 생각해서 본인 공부도 바쁠 테지만 누워있는 엄마에게 빼먹지 않고 산책을 권했는데 그럴 때면 그녀는 힘든 몸과 마음을 거뜬히 이겨내고 아들의 손을 잡은 채 걸을 수 있었다. 어느새 남편보다 듬직해진 아들에게 기대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 순간들이 그녀에겐 너무 행복하고 소중했다. 그토록 사랑하고 애틋한 아들이지만 아픈 엄마 곁에서 너무 많은 것을 신경 쓸 것이 분명했기에 그 짐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서 그녀는 아들의 캐나다 유학을 선택했다. 이토록 소중한 아들이기에, 암의 전이를 알게 된 후, 그녀의 머릿속은 캐나다에 가 있는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웃으라는 교수님의 권유로 그녀가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녀가 다시 참여한 이후로 이왕이면 가벼운 게임 위주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른 후, 매번 가벼운 게임만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순 없었고 그녀에게도 선택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의 프로그램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스펜서 존슨의 <선물>을 주제로 인생의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다. 과거에 있던 일을 돌아보고 과거에서 배울 점을 찾고, 지금 현재 일어나는 것에 집중하고 바로 지금 중요한 것에 관심을 쏟고,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는 활동이었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답을 달긴 했으나 다른 환자들과 각자의 답을 나누는 시간에는 얘기를 꺼렸다.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나는 그녀에게 작성한 답을 개인적으로라도 나눠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흔쾌히 프로그램 실에 남아 내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활동지에는 ‘과거: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많이 표현한 것, 아들이 중학교에 갔을 때 학원을 보내지 않은 것, 현재: 아들을 곁에서 가능한 한 멀리, 캐나다로 보낸 것, 아들과 하루 한 번 밝은 모습으로 통화하는 것, 미래: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답을 채 읽기도 전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더니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서글픔이 나에게 전해질 정도로 서럽게 소리 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말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며 휴지를 손에 쥐여주는 것뿐이었다. “선생님……. 저는요, 제 아들이 제가 이렇게 다시 암에 걸렸다는 걸 끝까지 몰랐으면 좋겠어요. 걔가, 그 착한 애가 제가 아프니까 신경을 엄청 썼잖아요. 한창 중요한 시기에 저 때문에 너무 많이 마음 쓰고 힘들어할까 봐 그게 가장 걱정스러워요. (아드님 걱정이 지금 이 순간에 가장 많이 되시나 봐요. 너무 아끼고 소중한 존재니깐. 맞아요. 그러겠어요. OO님 본인만 생각하면 어때요? 아들을 떠나서요. 요 며칠 생각 안 하려 하셨어도 혼자서 머릿속이 많이 복잡하셨을 것 같은데) 저 너무 힘들었어요. 수술받고, 항암하고. 근데 그걸 다시 어떻게 하겠어요. 처음이야 그렇게 힘든 줄 몰랐으니깐, 그거 해야 살 수 있다고 하니깐 견딘 거죠. 근데 지금은 그게(치료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다 알잖아요. 그리고 그거(치료) 한다고 완전히 나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남편이나 동생은 하루라도 빨리 치료 시작하자고, 그래야 더 효과가 좋을 거라고 하는데 전 그냥 이대로 죽고 싶어요. 우리나라에서 안락사만 가능하다면 안락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안락사하러 스위스에 가는 상상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게 된다고요. [한참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눈물을 흘림] (지금까지 버텨오신 게 너무 끔찍했으니깐, 다들 생각해서 치료를 권하는 건데도 야속하고 속상했겠어요. 그래서 그냥 다 끝내고만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혹시나 그런 선택을 했을 때 후회는 없으실까요) 사실 하나 걸리는 게 있긴 해요. 아들이요. 아들을 두고 가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아들이 힘들어할 생각만 하면……. 그리고 주변 가족들이 다들 원하니깐……. 한 번만 못 견디는 척 속아줘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드니깐 마음도 답답하고 머릿속도 복잡하고……. (OO님에게는 아들을 비롯한 주변 가족들이 다시 한번 그 크기를 아는 고통을 감내하게 할 만큼 소중한 거네요. 결국, OO님의 선택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 제가 이래라저래라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저한테 그간의 생각들, 복잡한 마음을 털어놓으시는걸 듣고 있자니, 고통받고 싶지 않고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기 싫은 부분, 그러면서도 OO님 가까이에서 그 고통을 기꺼이 함께하려는 가족들의 마음을 거스르고 싶지 않은 부분이 크게 갈등하는 것 같아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OO님의 선택이기에 가족들은 쉽진 않겠지만 존중해줄 거예요. OO님 스스로가 가장 후회가 덜 할 것 같은 선택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드님에겐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너무 늦지 않게 OO님의 상태에 대해 알렸으면 해요. OO님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드님은 강인하고, 또 OO님을 많이 사랑한다는 게 저한테까지 느껴지거든요.”

  당시 나는 일시적인 고통의 도피를 위해 삶을 마감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해져서, 경우가 다른 그녀와 개인적인 대화를 한다면 어떤 얘기를 해줘야 할지 고민을 했었다. 그때 우연히 접하게 된 책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책이었고 책 속의 구절 중 다음 구절이 인상 깊었다.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제어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스스로 써 내려간다는 건 그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제어할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두렵고 걱정스러운 것은 무엇인지, 지금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걸 위해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고 행동하는 것, 그것이 또 한 장의 인생 이야기를 스스로 써 내려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싶었다. 책을 통해 나름의 방향과 확신이 선 후였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두고 그 각각의 가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최소한의 후회가 남을 선택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와의 대화 끝에 힘든 마음의 결정을 내린 그녀는 다행히 이전보다 후련해했다. 물론 꽤 중대한 사항이었기에 결정을 내리고도 그 선택이 정말 옳은 것일까에 대한 고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적어도 그 위치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열심히 써 내려갔다. 남편에게 노트북을 전달받아 순간순간 드는 생각들과 느낌들을 짧게나마 기록하기도 하고, 방학에 한국으로 들어올 아들에게 어떻게 얘기를 꺼내면 좋을지 편지를 쓰는데 몰두하기도 했다. 항암치료 날짜에 맞춰 종양내과 병동으로의 전동 일정이 정해지자 그에 맞춰서 한동안 쉴 수 있는 병원 근처 요양원을 찾아보기도 했고, 작업요법 시간에 통증이 심해질 때를 제외하고는 빠지지 않고 참여하여 이전부터 탁월했던 만들기 솜씨로 가족들에게 선물할 것들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나중에 그녀가 나에게 말하길, 말 그대로 미래는 본인에게 없는 것과 같았는데 그런 암담한 상황에서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끔 해줘서, 그리고 그 미래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을 수 있게 해줘서, 그런 선물을 줘서 고맙다고 했다. 기적이 없는 한 언젠가는 남들보다 일찍 생을 마감할 것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한 번 겪어본 항암치료가 이번이라고 쉬울 것으로 생각되지 않지만, 과거에도 그래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본인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 바로 소중한 그녀의 아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며 현재를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정신과 안정병동에서 근무하면서는 상대적으로 접하기 힘든 이번 사례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사람의 마음을 간호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가 선명해졌다. 누군가의 선택을 제한하고 무작정 한 방향으로 설득하기보단, 개개인이 가치를 두는 것들이 무엇인지 충분히 생각해보게 하고 그 가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정도를 가늠하게 하는 것, 비로소 감내할 수 있는 후회를 짊어지려는 개인의 선택을 도와주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 나의 임무이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백수 3일 차] - 나에게 주어진 두 달의 여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