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아주 재미있는 논건으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도대체 사람은 왜 바람을 피우는가'이다. 벌써 몇 달 전 일인데 그에 대한 글이 이제야 정리되었다. 당시에는 '게임이론'이라던가, '본성'이라던가 여러 이야기가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는 '억제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어떠한 에너지를 분출하고 행동하는 것보다 분출된 에너지를 자정 하고, 행동을 억제하는 일이 더 힘들지 않은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바꿔버렸다. '도대체 사람은 왜 바람을 피우지 않는 것인가'로 말이다. 꽤나 뭇매를 맞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이런 말을 스스로 하기엔 멋쩍지만, 나도 나름 '순정파'다.
"약 50년 전 벤저민 리벳이 진행했던 실험이 있다. 리벳은 피험자에게 자발적으로 행동하기를 요구했다. 리벳은 피험자의 신경 세포에 측정 기구를 연결했고, 피험자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미 뇌에서 명령이 내려온 후 손이 움직였다는 것을 증명했다. 자유로운 결정이란 이미 내려진 결정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까? 리벳의 답은 매우 흥미롭다. 결정은 신경 작용으로 이미 정해진 것이 맞지만, 이행을 거부해 결정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자유라는 것이다. 자유의 원초적 형태는 ‘싫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젝의 위대한 수업 강의록 일부를 필자가 요약/발췌한 글이다. 별안간 자유의지가 있는가, 없는가까지 거슬러 올라가 논점을 확장할 생각은 없다. 나도 머리가 아프니까 말이다. 그저 리벳의 실험이 '억제성'에 대한 하나의 예로 간주될 수 있다면 다행이라 싶어 인용해 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사람은 왜 바람을 피우는가'라는 질문은 최근에 그러한 상황을 맞닥뜨린 재수가 더럽게도 없는 사람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라면 생각이다. 자신의 최대 이익에 부합하는 다른 사람을 찾았다거나(게임 이론), 좀 더 예쁜 여자, 좀 더 멋진 남자가 '본성'적으로 끌렸다거나 하는 분석은 괜스레 기분이 나빠질 따름이다. 내가 상대의 최대 이익에 부합하지 못하거나, 좀 덜 예쁘고 멋졌다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합리적인 분석이기는 하나 당사자라면 정말이지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이 아닌가.
그럴 바에야 '이 사람은 어째서 지금까지 바람 따위를 피지 않고 내 곁에 남아 주었던 것일까'를 생각해 보는 게 한결 기분이 나아지지 않겠는가. 비약해 말해보자면, 사람은 바람을 피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무서운 여론이 벌써부터 겁난다) 비약이라 보험을 들었으니 이야기를 좀 더 들어주기 바란다. 호감이 가는 이성을 만나고 싶은 충동은 솔로든 커플이든 모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억제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이렇게 보면 모두 '잠재적 바람둥이'인 것일까..)
리벳 실험의 교훈에 따라 커플은 신경 작용으로 이미 정해진 결정을 망가뜨리며 존속하는 것이라고 한번 상상해 보자. 숱한 유혹을 물리치고 자연스러운 욕망을 스스로 억제하며 꾸역꾸역 옆자리에 앉아 있어 주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보면, 지금 내 옆에 있어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지는 않을까. 그러다 문득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 떠나 버렸다면 슬프지만 이미 정해진 결정이니 '그래,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은 당연하다 싶은 일에는 애써 기분을 망치진 않는다. 꽤나 편협한 '정신승리'일지도 모르지만, 기분이 조금은 더 선선해질 수만 있다면야 무엇인들 못하랴.
바람피우는 놈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던가, 성숙하지 못하다라던가, 상대에게 아픔을 준다던가 하는 말들은 나 아니고도 말해줄 사람이 지천에 널려있다. 고로 나는 내가 아니면 하지 않을 것 같은 말을 하려 한다. 여러 원인들의 종착역인 '이별'에서 본질적인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억제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아닐까. 신경작용의 결정을 더 이상 망까뜨릴 수 없게 된 것이 아닐까. 그리 생각하면 순순히 신경작용의 결정을 따르는 상대가 참 애처롭게 보이지는 않는가. 그리고 지금까지 결정을 망가뜨려가면서도 남아준 것에 대해 조금의 고마움이 들지는 않을까.(이건 아마 힘들지도 모른다)
당시엔 그 '억제성의 가벼움'에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먼 훗날엔 그 정도의 억제성도 결코 가벼운 것이 아녔다는 걸 깨달을 때, 이별의 슬픔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은 왜 바람을 피우는가'에서 '사람은 왜 바람을 피우지 않는 것인가'로 질문을 조금 옮겨보면, 이는 '이별, 그거 뭐 특별할 것 없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바람이란 게 으레 쉬운 일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거듭 자신을 변호하자면 바람피는 것은 대단히 쉬운 일이며 합리적이다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러한 '일상성으로의 복귀'야 말로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여러 이별들을 감당하게 해주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연애 바보'라 불리는 필자의 무지한 생각일 뿐이니 그만 흘려듣기 바란다. 순정파에게 연애란 어려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