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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널하우스 Oct 25. 2024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


지인이 별안간 물어왔다. 성선설, 성악설 넌 어느 쪽이야? 나는 쉽게 답을 내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그에 대해서 나름 정리해 봤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물음을 가질 때, 쉽게 간과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성'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악을 최종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성품이나 성질과 같은 본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성품과 성질을 풍부하게 함유한 '지성'이랄까.


인간의 본성을 지성과 디지털적으로 구분하는 경우, 물음의 전제에 대한 메타적 물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본성과 지성은 몸과 마음처럼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어 따로 떼어내어 독립변수로써 사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날로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만 할 것이다.('마음을 먹는다', '몸이 기억한다'와 같은 표현들은 실로 절묘하지 않은가)


애초에 본성 그 자체로는 구분선이 없다. 마음과 같은 것을 아무런 여과 없이 좌우로 분절시킬 수는 없다. 그 마음을 '나쁘다', '착하다' 구분하기 위해서는 '기준'이란 것이 필요한데, 그 '기준'을 정의하고 성립시키는 것은 본질적으로 '지성'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본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성'을 거칠 수밖에 없다. 본성에 대한 '지성적' 설명은 
'지성적'으로 그 설명을 받아들이게 만들 수밖에 없다.


기계적인 합리론으로 비칠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본성에 대한 지성의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고 싶은 것이다. 성선설, 성악설, 성무선악설과 같은 본성에 대한 여러 가설들이 범하는 오류는 인간 본성의 분류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본성을 구분 짓는 '지적 상상력'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라는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이성을 가졌다고 자처하는 족속이 엄청난 잔학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이성의 타락이 야수성 그 자체보다 더 고약한 것이 아닌지 염려됩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홀로코스트라던가, 핵전쟁이라던가, 살인교사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성폭행이라던가, 절도범, 명예훼손도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 세계에 없는 것들이 인간 사회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본성이 '지성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정의가 다소 늦었지만 지성(知性)은 지각된 것을 정리하고 통일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식을 낳게 하는 정신 작용을 말한다. 지성(至誠)은 지극한 정성, 아주 성실함을 말한다. 또 다른 지성(至性)은 더할 수 없이 착한 성질을 이른다. 이 세 가지 지성의 정의가 인간의 본성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각된 것을 정리하고 통일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식을 낳게 하는 정신 작용(知性)을 아주 성실히 이행한다면(至誠) 그것은 더할 수 없이 착한 성질을(至性) 말하는 것 아니겠는가. 반대로 이러한 정신 작용을 아주 게으르고 간단하게 이행한다면 그것은 맹목적인 이성의 타락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본성에 대한 '좋고, 나쁨'을 이야기할 때, 그러한 평가는 타인에 대한 행위를 기초해 이루어진다. 타인에 대한 지성이 게으르게 작용하여 자신밖에 모른다면 결과적으로 악을 범할 확률이 높다. 반대로 타인에 대한 지성이 성실하게 작용한다면 선을 베풀 확률이 높다. 타인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일은 머리를 많이 써야만 하는 무엇보다 지성적인 활동인 것이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 에 대해서 나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했지만 이 글은 종국에 선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성적이어야만 한다는 주장을 담게 되었다. 어리석기 보다야 현명해지기를 누구나 바라지 않겠는가. 이 글을 읽고 되도록이면 선한 인간으로 사는 게 좋지 않겠어?라는 생각이 드는 이가 한 명 정도만 늘어도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길 바란다. 지성(知性, 至誠, 至性)이면 감천(感天)이라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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