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점을 좋아했다. '뛰어남', '빠름', '위', '높음', '얻을 것', '성공', '성장', '트렌드', '결과' 이런 것들을 고점이라 생각했고 서둘러 쟁취하고 선점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점을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꾸준함', '느긋함', '아래', '낮음', '주어진 것', '실패', '성숙', '기본', '과정' 같은 것들 말이다. 이는 자연스레 나와 다른 타인을 바라볼 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그 사람의 탁월한 고점에 눈이 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토대를 지탱하고 있는 저점이 궁금해진다.
어느 진화생물학자는 진화라는 것이 '우월한 이점'을 대표하기보다 '치명적인 단점'을 보완하는 것에 더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무통에 담을 수 있는 물의 양 역시 가장 긴 나무판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짧은 나무판자로 정해진다.
사람은 서로가 고점으로 만나는 삼각형이 아닐까. 당장 보이는 것은 꼭짓점뿐이지만, 그 고점을 통과하면 감히 상상도 못 할 만큼 아득한 밑변이 감춰져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