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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正道)

by 널하우스


근 몇 년 전부터 나는 어떠한 환상에 점점 다가가고 있는 듯하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서는 주변 사람들이 해주는 말은 대강 이렇다. '이상주의자', '좋은 사람 콤플렉스', '특이하다', '성숙하다', '종교적이다' 등등.. 이렇게 목록화해보니 내 주변에는 꽤 좋은 사람들만 있는 듯하다. 나열된 리스트로 추론해 보건대, 과연 내가 어떠한 환상에 다가가고 있는 것일지 궁금하지 않은가?(궁금하지 않으시면 여기서 멈추셔도 좋습니다.)

200자가 넘는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를 전해 드리며, 이 래디컬 한 환상에 대해 말씀을 드리자면 그것은 '정도(正道)'에 관한 것이다. (김이 팍 새어버릴지도 모르겠지만 이왕 읽으신 김에 마저 읽으시길 부탁드립니다.) 종종 나는 삶에 대해서 '정도'란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이 들어버리곤 한다. 들어보면 굉장히 낡은 옛 생각 혹은 '사어'처럼 들릴 것이다. 가령, '돈은 땀 흘린 만큼만 번다'라던가 '보람되는 일을 한다'라던가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 정도로 풀이될 평이하고 흔해 빠진 일상의 상투구들이기 때문이다.

왜 그러한 환상에 잠기게 되었냐 하면, 어떠한 '이데올로기적 폭주'를 감당하기 위함이 아닐까 스스로 짐작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폭주적 사변'에 대응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높은 심급의 가치를 설정하고 그에 몰입한다거나, 현재의 자신보다 낮은 심급과 비교하며 안심한다거나, 그저 현재에 충실히 만족한다거나 하는 둥 여러 가치판단의 프로세스가 기저에 존재할 것이다. 다만 이 모든 방법론은 일종의 '억지부림'일뿐이다. 그런 정도의 칼로 일도양단할 수 있을 만큼 삶은 단순하지가 않으니까 말이다.

과학 연구는 초기 조건을 설정하고 실험을 진행한다. 가설을 물화하여 실험하기 위해서는 여러 선수 조건을 정리하고, 가장 작은 변수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복잡한 연구일수록 변수의 최소화 작업은 철저히 요구된다. 이니셜라이즈(초기화)를 통해 이니셔티브(구체적인 계획)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초기화, 최소화 작업에 요청되는 초기 조건을 나는 '정도'라 부르는 듯하다. '인생은 과학 연구와 좀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간혹 한다. 주어진 조건을 가지고 이것저것 실험해 보며 점진적으로 구명해 나아가는 모습이 삶과 참 닮아있지 않은가.


개중에는 가설 증명에 성공하는 실험이 있을 것이고, 비껴 나가 실패한 실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전혀 다른 인지를 발견해 새로운 가설을 세우게 만드는 실험도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이데올로기적 폭주', '폭주적 사변'들은 실험 중에 문득 유니크하고 스페셜하며 기상천외한 오리지널리티를 생산해 낸다. 하지만 우울감이라거나 허무주의, 삶의 부조리함(무의미성)에 흠뻑 잠기게 만들기도 한다.


빼어난 오지널리티를 얻는 것도 좋겠지만, 혹여나 울적함에 잠겨버리게 된다면 실험은 잠시 중단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울적하고 고독한 칼을 다스리기 위해 나는 아마도 '정도'라는 칼집을 준비해 놓는 게 아닐까 싶다. 실험을 통해 제법 멀리 나아갔다가도 전혀 틀린 길에 들어서게 된다거나, 의미를 잃어버린다면 초기 조건으로 재빨리 회귀해야만 한다. 다시 변수를 정리하고 이니셜라이징(초기화)하여 스스로를 일으켜야 한다.


나는 여러 복잡한 실험을 자행하고자 한다. 고로 최소한의 변수가 필요하다. 생활에 필요한 돈은 땀 흘린 만큼만, 될 수 있는 한 보람되는 일을 하고, 주어진 상황에 감사할 것들을 먼저 찾아보는 정도가 딱 홀가분하고 편하다. 두 손에 꼭 쥔 칼로 사방을 베어버리며 종횡무진 나아가다 보면 '어라, 여기가 어디였더라?' 하며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풀잎 냄새, 꽃 냄새, 술 냄새, 흙과 수풀이며 핏자국들까지 묻어 있는 이가 빠질 대로 빠져버린 칼은 반복적으로 휴식을 요구한다. '정도'라는 칼집에 회수되어 다음 발검의 순간이 도래할 때까지 말이다.


쾌검이든 환검이든 패검이든 칼집에서 뽑혀 나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는 검로에만 너무 심취하다 보면 칼날은 어느새 무뎌져 버린다. 무뎌진 칼에 베일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칼은 칼집에 보존되어 대장간까지 온전히 돌아와 이니셜라이징되어야 한다. 이것도 일종의 억지부림이라면 억지부림이겠지만, 예리하게 날이 선 칼일수록 칼집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이쯤 되면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 부름 직하다. 이 글도 무뎌진 것 같으니 이만 칼집에 넣어야겠다. 오늘의 '환상 베기' 일 초식은 여기서 이만 납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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