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4일에 시작한 커뮤니티를 2025년 2월 15일 마무리한다. 최근 들어 모임활동이 뜸해지긴 했지만, 돌이켜 보니 잊지 못할 추억들이 많다. 커피를 마시며 인간 본성에 대해 토론을 나누거나 위스키를 마시며 밤새 수다를 떨기도 했다. 필사모임부터 리본 공예, 브랜딩 수업 관련 후기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함께 만들고 공유했다. 오픈마켓의 셀러가 되어 공방에서 만든 드립백을 판매도 해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걸 했구나'. 단톡방 기록과 사진첩을 죽 훑어본 필자의 감상이다.
가족이나 지인 몇몇은 왜 그런데에 시간과 돈을 쓰느냐 묻기도 했다. 내가 생각해도 여기서 수익 모델을 당장 실현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본인의 커리어에도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시간과 자원을 오롯이 자신에게 투자해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백배 나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필자는 오래도록 마음속에 '연결'이라는 관심사를 품어왔다. 오래 품어온 화두를 현실에 반영시켜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것 같다. 쉽게 말하자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커뮤니티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물론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지인이 공방을 오픈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한 땀의 대표가 없었다면, 커뮤니티를 시작하겠다는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카페 개업 선물 뭐 필요하냐고요.)
커뮤니티의 커뮤니티, 이른바 메타 커뮤니티를 지향해 보자는 거창한 문제설정으로 커뮤니티를 만드는 커뮤니티가 되기를 희망했다. '연결'이라는 뜬구름에 '느슨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였고 '관계'의 느슨함은 물론 '주제'조차도 느슨하기를 바랐다. 나쁘게 읽으면 '게으른'일 것이고, 좋게 읽으면 '적당한'으로 풀이될 것이다.(물론 필자는 후자를 희망하긴 한다.) 참여자들이 손수 만들어가는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이만하면 충분한 가능성을 보았다고 스스로는 자평한다.(게으른 모임장 때문에 고생 많았습니다. 여러분.) 참여하고 도움 주신 모든 분들께도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뭔가 대단한 일을 치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그렇게 느껴진다면 필자가 뭔가 대단히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원점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그러려니 해주시길. 다음은 커뮤니티 모집 전문이다. 20개월 전의 천진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주옥같은 시간이었다.
커뮤니티 시작합니다.
근사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작하려고 합니다. 동호회나 모임을 기획할 때, 가장 먼저 선결되어야 하는 조건은 아마도 ‘주제’ 일 것입니다. 등산, 노래, 춤, 악기, 독서, 커피, 영화 등 ‘공통 관심사’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를 정하고 함께 할 사람들을 모집하는 것은 모임을 꾸려나가는 상식적인 프로세스입니다.
하지만 한 땀의 커뮤니티는 사람부터 모집합니다. 모집된 사람들이 스스로 ‘주제’를 결정했으면 합니다. 커피 한잔 마시며, 문학이며 철학이며 토론을 벌이기도 하고, 죽치고 앉아서 시간을 보내도 좋습니다. 어떤 성과에 대한 압박 없이 그저 편안하게 대화를 풀어가는 와중에 불현듯 서로가 통하는 ‘공통 관심사’를 찾게 된다면, 그리고 ‘우리 이거 한번 해볼래?’라는 자연스러운 동기가 발현된다면 “좋아, 계획대로 되고 있어”라며 우쭐댈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정돈된 체계와 규칙을 구축해 놓아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혼란스럽기 마련입니다. 사람도 날씨도 세상도 도저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무엇을 하고 싶을지, 어떤 것을 이야기하고 싶을지,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것부터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준비한 장소는 간판도 없고, 의자도 몇 개 없습니다. 팔레트를 짜 맞춰 손수 만든 바테이블이 전부입니다. 그나마 여러분께 내어 드릴 수 있는 것은 신선한 생두를 정성껏 로스팅한 드립 커피 한 잔과 맛과 향을 음미하며 떠들 수 있는 공간 정도일 겁니다.(커피 많이 팔아서 의자부터 구매하겠습니다.)
근사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 말했지만, 아직은 근사함과 꽤나 괴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누가 알겠습니까. 한 땀 한 땀 기워가다 보면, 황혼에 접어들 무렵, 제법 근사한 커뮤니티가 되어있을지도요. 반복하자면, 커뮤니티를 시작합니다. 하얀 천 위에 함께 조각을 덧대고, 관계를 수선해 나갈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함께 할 타인들을 위해 친절함만 꼭 쥐고 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