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주 드는 생각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철학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특히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지금, 가장 많이 회자되는 질문은 “과연 인간의 일자리는 대체되는가?”라는 문제다. 결국 이는 노동이라는 인류의 근본적인 가치를 어떻게 재정의할 것인가 하는, 꽤나 상위 층위의 물음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담론에 좀처럼 마음이 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담론이 형성되기까지, 어떤 질문들이 생략되었는지, 그 사이를 구성하는 논리와 감정의 결을 먼저 들여다보고 싶다.
예컨대 누군가는 실업률 증가를 보며 “AI가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또 다른 이는 “새로운 직업들이 나타날 것이다”라고 낙관한다. 두 주장 모두 그럴듯하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실업률이라는 숫자가 만들어낼 사회의 구체적 풍경에 관심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왜 그런가 하면, 결론을 너무 빨리 정해버리면 딱히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게 대체된다”는 말은 현재의 노동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새로운 직업이 생길 것이다”라는 말도 지금의 노동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든다. 어느 쪽이든, 지금 이 시점의 나에겐 그다지 실질적인 감각으로 와닿지 않는다.
물론 같은 질문에 대해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가 대체되기 전에 더 많이 벌어두자”거나, “다가올 미래에 대비해 미리 준비하자”는 식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말들도 여전히 멀고 추상적으로만 들린다. 도대체 얼마를 벌어야 ‘안전’하다는 걸까? 어떤 분야에 어떤 노력을 해야 ‘적응’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질문의 수위를 낮추기로 했다. 거창한 예측이나 결론을 밀어붙이기보다, 지표와 사람들의 반응, 사회 분위기를 관찰하며 유들한 상태에 머물기로 했다. 어느 한쪽의 말만이 옳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각각의 말이 ‘논리적으로는 맞는 이야기’라는 사실만이 공통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맞는 이야기’는 대부분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말 그대로 하나마나한 경우도 많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든 결론을 내리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언어로 이 문제를 말하고, 어떤 기대와 두려움을 섞어 말하는지를 듣는다. 그런 태도는 때때로 굉장히 힘 빠지는 철학처럼 느껴진다. 철학이라는 것은 자고로 심오하고 오묘해야 하는 법인데 말이다.
그러다 보면 문득, 나는 생각보다 철학적이지 않구나, 하는 자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