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 전시회를 바탕으로
예술을 위한 공간 <Aㅏ트> 매거진
이 글은 예술플랫폼 아트렉처에도 실렸다.
2018년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가의 자화상>(1972년작)이 천 억 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되어 화제를 불러모았다. 현존 작가의 작품가 중 최고 기록이다. 그렇지만 작품의 가격보다 더 주목하고 싶은 건 80세가 넘은 그가 열정적으로 작품을 만드는 현역의 예술가라는 점이다. 게다가 최첨단 미디어 중 하나인 아이패드로 작품을 만들기까지 하다니. 아이패드를 든 노인을 목격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보기 드문 현실에서 정말 신기방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림이 세상을 볼 수 있게 한다.”는 호크니의 말처럼 그는 그림을 통해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을 마음껏 펼쳐 보이고 있다. 자기가 보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던 고흐처럼 말이다.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133개의 작품에서는 그가 세상을 보여주려고 했던 다양한 방식들을 살펴볼 수 있다. 회화, 드로잉, 판화, 사진에 이르기까지 -아쉽지만 아이패드로 제작한 작품은 오지 않았다- 온갖 표현 기법들을 활용한 작품들 속에서 그가 경험한 세상과 인식한 세계가 드러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sjo6Z7pnzY
이번 전시는 총 7가지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기’, ‘로스앤젤레스’, ‘자연주의를 향하여’, ‘푸른 기타’, ‘움직이는 초점’, ‘추상’, ‘호크니가 본 세상’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가장 끌만한 주제는 ‘로스앤젤레스’, ‘자연주의를 향하여’, ‘호크니가 본 세상’을 꼽을 수 있다. ‘수영장 시리즈’와 ‘2인의 초상화’, 그리고 벽면을 가득 채우는 대형 작품들이 같이 데이비드 호크니를 대표할 만한 작품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들은 그 앞에 서면 달리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의 감동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데이비드 호크니를 좀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젊은 시절 유행했던 추상표현주의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추상표현주의란 구체적인 대상을 그리는 대신 물감을 떨어뜨리거나 흩뿌리는 기법 또는 하나의 색이나 두 가지 이상의 색으로 캔버스 전체를 칠하는 기법으로 추상적인 선과 면으로 표현하는 미술 사조를 뜻한다. 대표적으로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크가 있다.
이러한 시대의 조류와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추구하려 했다는 점에서 데이비드 호크니의 집념을 느낄 수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 자체가 하나의 장르’라는 말처럼, 그리고 그가 살아온 세월 만큼이나 그는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추상이든 구상이든 사진이든 회화이든 판화든 드로잉이든 그에게 표현의 수단은 중요하지 않았다. 호기심 많은 예술가인 데이비드 호크니는 특정한 미술 사조나 양식에 구애되지 않는 그만의 스타일을 구축해 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hUvoG_90XeE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 ‘수영장 시리즈’에서 데이비드 호크니는 아주 단순한 구성물 속에서 역동적인 움직임을 찾아내고 있다. 그에게 사실적이란 오랜 시간 관찰한 수영장과 수영장을 둘러싼 배경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일이었다.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더군다나 허전하고 외로워보이기까지 한- 그 정적을 깨는 아주 작은 사건 -가령 <더 큰 첨벙>이란 작품에서 ‘첨벙’ 하는 순간과 같은- 을 통해 그림을 흔들듯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한편 '자연주의를 향하여'에서 등장하는 '2인의 초상화'에서는 세심한 배경 묘사와 감각적인 인물 묘사가 돋보인다. 데이비드 호크니가 바라보는 인물, 그리고 인물을 둘러싼 배경, 빛, 구도, 공간, 시간, 사물 그리고 그 인물 간의 관계와 그것들 사이의 이야기를 매우 함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호응을 이끈다. 특히 '빛'과 '관계'가 이 시리즈가 보여주는 말 그대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 다시 말해 데이비드 호크니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세계의 진실을 제대로 담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그리고 ‘호크니가 본 세상’에서는 60개의 캔버스를 이용한 <더 큰 그랜드 캐니언>과 50개의 캔버스를 이용한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크기만 해도 관람객을 압도하는 이 두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걸어가듯 관람해야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전시 마지막 작품인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는 데이비드 호크니가 평생을 통해 표현하려 했던 예술의 대상과 기법이 총망라되어 있다. 3,000장의 사진을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이어 붙여 제작한 이 작품에서는 그의 예술 세계와 인생을 압축하여 펼쳐놓은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 자체로 하나의 갤러리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5z04YHAr-WE
평면에 입체감을 불어넣으려 했던 시도, 일반적인 원근법을 무시한 역원근법, 그리고 다양한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사물에 이르기까지 데이비드 호크니는 인간이 세상을 본다는 것, 다시 말해 어떻게 시각적으로 세상의 참된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지를 고민해 왔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이번 전시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고흐를 존경하고 피카소를 사랑했던 노년의 예술가가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예술에 대한 탐구로 인생을 바쳐왔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작품 속에 담긴 그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오늘도 이 세상 어디에선가 작품을 위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데이비드 호크니를 떠올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