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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시락 Mar 17. 2019

(그림책 리뷰) 누가 진짜 나일까_다비드 칼리_책빛

암울한 미래 사회를 조명하는 그림책

예술을 위한 공간 <Aㅏ트> 매거진
이 글은 예술플랫폼 아트렉처에도 실렸다.

할 이야기가 많아 <1. 이야기와 주제>와 <2. 그림과 패러디>라는 두 가지 테마로 구분하였다. 짧은 리뷰로 후루훅 보고 싶으신 분들은 여기를 클릭하시기 바란다.


1. 이야기와 주제


4차 산업혁명이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즘, 새롭게 변할 시대에 대한 기대 만큼이나 그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낙오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크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로봇과 AI가 지배하는 세상이 오면 인간이 쓸모없는 존재가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특히 노동의 경우 더욱 그렇다. 언젠가 인간이 노동 현장에서 밀려나면 지금보다 더 암울한 세상으로 변할 거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물론 변수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지금 소개하는 이 책 또한 그 변수를 간직하고 있다.

복제인간 쇼핑몰


《누가 진짜 나일까?》는 미래의 노동 현장과 복제인간이라는 두 가지 테마를 매우 잘 녹인 그림책이다. 무엇보다 스토리가 특별하다. 일이 힘들고 의미가 없던 '나'는 이를 사장에게 이야기했고, 사장은 그런 걱정 따위는 할 것 없다며 '나'를 'DUPLEX'라는 곳으로 보낸다. ('DUPLEX'라는 이름에서 ‘복제’를 연상할 수 있다.) 이곳에서 '내'가 얻은 것은 잠깐의 꿀맛 같은 휴식과 나를 똑 닮은 '복제 인간'이었다. '나'의 휴식은 휴식이 아니라 복제인간을 본뜨기 위한 일종의 스캔이었다.


이제 '나'는 골머리 아픈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장의 말대로 '나'는 드디어 다른 걱정 없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다른 일은 복제 인간이 모두 해 줄 테니 이 얼마나 멋진가? 복제 인간이 '나'를 대신해 부모님을 돌보고 연애도 하고 결혼까지 해줄 것이므로, 나는 오롯이 노동자로서의 인생을 살면 그만이다. 이 그림책이 갖는 변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노동에 집중하게 해주기 위해 ‘나’를 대신할 수 있는 복제인간을 탄생시킨 것이다. 복제인간이 내 노동을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복제인간을 대신해 노동을 하다니!


그러던 어느 날, 톱니바퀴에 사람이 끼어죽는 일이 발생하였다. 끔찍하게 죽은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다음 날 그녀가 행복한 표정으로 멀쩡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제 ‘내’가 보았던 그녀는 누구이고, 오늘 본 그녀는 대체 누구일까? ‘나’는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이상한 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나'는 책을 읽고 있는 복제인간과 마주쳤다. 이제 '나'는 내가 복제 인간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가 죽는다 하더라도 톱니바퀴에 끼어죽은 그녀처럼 ‘나’의 복제인간이 내 행세를 할 테니 말이다.

‘나’의 존재 의미는 복제인간이 대신한다.


두려움에 떨던 나는 그날 밤 공원에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도망치듯 회사를 나왔고 몇 년이 지난 후 크레이프 장사를 차린다. 마지막 장면에서 '읽는 나' 역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씁쓸했다. 다른 직업을 찾아서 다행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살던 터전에서 쫓겨나야 하는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노동에 시달리고 복제인간에게 내 자리마저 내줘야 하는 세상에서 숨어살듯 살아가는 삶이 과연 행복할지도 의문이다.


그림책 속 세상은 삶과 일의 균형을 맞추는 ‘워라벨’이 한창인 요즘 세상을 보면 아마 ‘배부른 소리’라고 떠들지 모른다. 책 속의 내용처럼, 일을 하다 지쳐 점점 피곤해지고 종종 사무실에서 잠이 들며 집에 와 밥을 먹고 나면 쓰러지고, 그렇게 어느 날부턴가 회사를 다니려 사는지 날 위해 사는지 누굴 위해 사는지 모를 때가 올 것이다. 내가 사라져더 그 누구도 슬퍼하지 않고 나의 의미마저 사라지는 순간, 그땐 스스로 물어야 한다. "이제, 내 차례인가?"


•영상으로 보는 책리뷰 - [북book찢어라]

https://tv.kakao.com/v/409184704


출판사 제공 북트레일러



2. 그림과 패러디

스토리만큼이나 이 책의 비극성을 더하는 것은 이 책의 그림이다. 곳곳에 숨어있는 패러디가 재미나다. 이 패러디는 이 그림의 주제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작가인 다비드 칼리 역시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터인데, 이 책의 그림은 클라우디아 팔마루치가 맡았다. 클라우디아 팔마루치의 그림이 갖는 특징은 대상에 대한 거리감을 둔 조금은 냉담하게 느껴지는 시선과 흙을 깐 듯한 까끌까끌한 표면을 연상시키는 질감이다. 특히 그리는 대상이 사람인 경우 대체로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사물인 경우 사실 그대로의 모습을 곧이 곧대로 전달한다. 그리고 무질서한듯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람들의 배치에 이르기까지 클라우디아 팔마루치는 저 멀리 관찰자로서 서 있는 듯하다.


클라우디아 팔마루치의 일러스트


1) 첫 번째 패러디는 찰리 채플린과 함께 무성 영화 시대를 이끌었던 감독이자 배우 중 하나인 버스터 키튼이다. ‘위대한 무표정’이라는 후세 영화인들의 칭송처럼 그는 항상 무표정한 표정으로 영화를 찍었다. 슬랩스틱이 중심인 영화에서 이 무표정은 -패션 모델이 스타일을 부각시키기 위해 무표정으로 일관하듯- 오히려 그의 다양한 동작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책의 표지는 버스터 키튼의 대표작 중 하나인 <셜록 주니어>(1924)가 모델로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탐정이 되는 법>이란 책을 읽고 있다.

이는 책 속의 주인공 자비에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에게 닥친 불운을 대하는 장면으로 재탄생한다. 고개를 갸웃 하는 무표정과 달리 그 앞에는 엄청난 불운이 기다리고 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버스터 키튼의 영화 <셜록 주니어>


2) 두 번째 패러디는 막스 클링거의 판화 <시시포스>(1914)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 시시포스 신화는 시시포스가 신 하데스를 속인 댓가로 저승에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올리는 영원한 형벌에 처해졌다는 이야기다.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인 알베르트 까뮈는 시시포스 신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 <시시포스 신화>에서 시시포스의 노동을 인간이 처한 실존적 부조리를 상징하는 상황으로 묘사했다.

이는 앞서 ‘이야기와 주제’에서 밝혔듯 복제인간이 ‘나’를 대신해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닌 반대로 ‘나’가 복제인간을 대신해 노동을 하는 ‘부조리한 상황’을 묘사하는 데 활용하였다.
                                                           출처 : 구글 이미지


3) 세 번째 패러디는 프란치스코 고야의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1799)이다. <로스 카프리초스>(변덕이라는 뜻)라는 판화집에 담긴 판화로, 잠자는 인물 주변으로 고양이·올빼미·박쥐의 형상을 한 괴물들이 우글대고 있다. 계몽주의 시대에 고국 스페인이 처한 국내외적 상황을 판화 속 ‘잠자는 인물’에 대비시킨 것이다. 로마 카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계몽주의 국가와 반대 노선을 걸으며 전쟁을 치르고 횡포를 일삼던 국왕과 성직자, 그리고 귀족에 대한 불만이자 비판으로 볼 수 있다.

계몽주의가 표정했던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분명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며 인류 문명엔 커다란 변혁이 일었다. 그렇지만 인간의 이성으로 탄생한 ‘괴물’인 복제인간이 이제는 인간을 대신하여 책 속의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를 고야의 판화 속 기괴한 분위기로 연출하였다.
                                                           출처 : 구글 이미지


4) 네 번째 패러디는 정신질환자를 그린 데오토르 제리코의 ‘초상화 시리즈’(1820년경)에서 영감을 얻었다. 데오토르 제리코는 유능한 정신과 전문의 장 조르제 박사의 요청으로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모습을 사실적이면서도 연민을 담아 그렸다.

지친 노동자의 표정을 정신질환자의 표정에 빗대어 표현한 책 속 그림 역시 말 그대로 ‘정신 나간’ 사람들의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복제인간에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존재 의미나 사회적 역할에서 완전히 배제된 망연자실한 표정 그대이다. 그렇지만 데오토르 제리코의 초상화처럼 그들에 대해 공감하게 만든다.
출처 : 구글 이미지


5) 다섯 번째 패러디는 도메니코 그놀리의 <구두>(1967)를 모델로 하였다. 도메니코 그놀리는 이탈리아 태생의 화가로 미국으로 이주 후 팝아트 요소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렸다. 사물과 인물이 갖는 디테일한 모습들을 확대하거나 과장하여 얻는 이미지를 표현하였다. 팝아트의 대상들은 대체로 자본주의가 갖는 소비 대상으로서의 ‘상품’이라는 점에서 그 대상에 대한 애정보다는 그 대상이 갖는 물질적 가치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어디나 널려 있는 사물’들이라는 무가치를 상징한다.

책 속에서 회사를 탈출하는 장면에서 ‘구두’는 탈출을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팝아트가 가진 요소, 다시 말해, 누구든 복제인간으로 ‘대체 가능한 인간’이기에 인간 개개인이 갖는 고유한 생명의 가치나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무의미해진 현실을 고발한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얼굴 없는 노동자’. 이 책은 한편으로 노동 소외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누가 진짜 나일까? 네가 진짜 나일까, 아니면 내가 진짜 너일까. 만일 내가 없는 사이 내 집에 누군가 들어와서 나의 행세를 한다면? 아니면 내 행세를 하지 않다 하더라도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나타나 내 자리를 차지한다면? 그리고 이 세상에서 나의 존재 가치를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면? 이런 일이 실제로 발생한다면 어떨까?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 책은 다양한 그림의 패러디를 통해 이러한 문제의식을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다.


*예술, 이상을 향한 인간의 진격 - 김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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