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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시락 Feb 03. 2020

(전시 리뷰) 알폰스 무하_마이아트뮤지엄

파리를 휩쓴 체코의 국민화가

예술을 위한 공간 <Aㅏ트> 매거진
이 글은 예술플랫폼 아트렉처에도 실렸다.

예쁘다!

알폰스 무하 작품을 마주한 사람이라면 대개 이 한 마디를 외칠 것이다. 그렇다. 이쁘다. 그의 작품 안에 들어선 여인이라면 누구나 이뻐질 테니까. 무명의 화가였던 그가 유명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1894년 어느 날의 일이었다. 당시 파리의 대배우였던 사라베르나르의 연극 포스터를 제작했던 업체에서 기존 작가의 문제로 급하게 그림을 그려줄 사람이 필요했다. 알폰스 무하가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그것은 곧 파리 시내를 떠들썩하게 만들 사건이었다.

<사마리아 여인>(완쪽)과 <햄릿>(오른쪽) 포스터

알폰스 무하는 상하로 긴 걸개 그림 형식에 그리스 여신의 자태를 통해 배우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화려한 의상에 세련된 문양, 그림 속 여인을 감싸안는 듯한 원형의 형태(후광 효과), 그리고 그 속에 공연의 제목을 넣은 글자 배치까지, 당시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의 창조였다. 알폰스 무하의 섬세함이 포스터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포스트를 본 사라 베르나라는 자신의 공연 포스터 작업을 알폰스 무하에게 맡기기로 결정했을 만큼 만족했다.(배우 역시 실물보다 더 이쁜 자신의 그림을 원했을 테니)


특히 알폰스 무하의 포스터의 특징 중 하나는 ‘자연’이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포스터를 보면 포스터 주인공의 머리 장식이나 뒷 배경 등이 대개 꽃이나 나뭇잎, 또는 나무 줄기를 하나의 문양으로서 매우 화려하게 표현하였다. 나아가 ‘자연의 의인화’를 통해서 그림 속 여인을 자연에 빗대어 더욱 신비롭고 부드러우며 욕망어린 모습으로 연출하였다. 19세기 유행했던 이러한 미술양식을 ‘아르누보’라고 부르는데 자연에서 따온 형태, 색채, 모양, 여기에 더해 화려한 디자인과 대담한 여인의 모습 등을 담은 그림 스타일을 가리킨다.

아르누보 스타일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

알폰스 무하가 활동하던 당시 파리는 ‘벨 에포크(Belle Epoque)’ 시대라고 부르는 문화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벨에포크’란 1890~1914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가리키는데, ‘좋은 시절’이라는 뜻도 담겨있다. 당시 파리는 모든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동경하던 곳이었다. 인상주의 화가들과 유명한 소설가들이 활동했고 세계만국박람회가 개최되고 에펠탑이 건립되는 등 새로운 문물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툴루즈 로트렉이라는 잘 나가던 포스터 화가 역시 이 시기에 활동하고 있었다.


포스터를 시작으로 알폰스 무하는 광고로 점차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광고에 활용하였던 배우의 포즈와 물건을 들고 있는 위치는 오늘날 광고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품 광고는 ‘Q’ 형태로 구성하여 제품을 선전하는 인물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마지막엔 그 시선이 제품에 향하도록 만들었다. 배우의 매혹적인 모습이 사람들의 이목을 저절로 이끈다. 술, 향수, 자전거에 이르는 제품 광고를 보고 있자면 이 시기(한국은 조선 말이였으니) 에 이런 제품들이 등장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다양한 제품을 선전하는 포스터를 오늘날 광고와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그렇지만 그는 그저 예술가로 그친 것은 아니었다. 알폰스 무하는 말년에 체코의 구국 운동에 앞장섰다. ‘슬라브 서사시’라는 20편의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슬라브 민족 정체성을 고취시키고 조국 체코의 독립을 염원하는 활동을 하였다. 물론 이를 가만히 둘 수 없었던 독일의 나치는 알폰스 무하를 체포하였고, 심문의 후유증으로 얼마 뒤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10만의 인파가 운집하였다고 한다. 상업적 화가는 어느덧 체코와 슬라브 민족을 대표하는 국민화가가 되어 있었다.

체코에서 열렸던 축제 전시 포스터

상하좌우 2-3미터에 이르는 이 거대 작품을 전시회에서 볼 수는 없다. 대신 이곳에서 감상하기 바란다.

알폰스 무하 파운데이션에서 그림을 확인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 찾아본 슬라브 서사시 영상이다.


알폰스 무하의 영향력은 훗날 일러스트와 애니메이션에서 발휘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잠시 잊혀졌던 ‘무하 스타일’은 1960년대 영국과 미국의 그래픽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에게, 그리고 1980년대 들어서는 일본 만화 작가와 애니메이션 감독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주인공을 부각시키는 그림 속 구도와 형태, 매우 세심한 장식,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알폰스 무하의 상상력이 그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타로 카드와 여자 스카프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상업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추고 있으면서도 예술성이 녹아있는 ‘무하 스타일’의 부활이었다.


230편에 이르는 작품이 전시되는 알폰스 무하 전시회는 3월 1일까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린다. 그가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고 얼마나 많은 상상을 했으며 얼마나 많은 습작을 했을지 떠올려 본다면 이쁘기만한 알폰스 무하의 작품이 또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화려하고 세련된 작품을 창조해내기까지 그가 기울인 노력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가 상업적 그림을 통해 단지 돈을 벌려했던 것이 아니라 수많은 대중에게 예술을 쉽게 전달하려 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넘어서고자 했던 알폰스 무하의 ‘대중적 예술’을 느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예술, 인간 이상을 향한 진격 - 김바솔

^엮인 글 : 보통의 거짓말_서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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