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거 90일의 기록
시사회 초대 받은 입장에서 영화에 대해 가급적 좋은 평을 남기려고 노력하는데, 오늘은 다소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는 내 기준에서의 아쉬움이고 단지 악평을 위한 리뷰는 아니다. 불교에 관심이 있거나 이 영화에 대해 궁금하다면 읽어보길 바란다. 영화 줄거리에 해당하는 약간의 스포일러는 있다. 5월 27일 개봉이다.
불교에서 여름과 겨울 두 철, 일정 기간 동안 수행에 전념하는 기간을 갖는데, 이를 ‘안거’라 부른다. 여름철의 안거를 ‘하안거’, 겨울철의 안거를 ‘동안거’라 부른다. 이 기간 동안 스님들은 육신의 정념과 욕망을 모두 끊은 채 자신을 한 공간에 가둔 채 수행에 정진한다. 그리고 불자들은 안거 동안 스님들이 그 수행에 ‘성공’하기를 기원하기 위해 함께 기도하거나 스님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며 직접 공양에 나서기도 한다.
<아홉 스님>이라는 영화는 바로 이 안거, 그 중에서도 동안거를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2019년 겨울 한 철, 90일간의 동안거에 뛰어든 아홉 스님들의 이야기다. 한국 불교 역사상 최초로 천막 동안거를 통해 정진하게 된 아홉 스님들은 난방 기구 하나 없이 폐쇄된 천막에서 7개의 엄격한 규칙을 따르기로 맹세한다. 이를 어길 경우, 승적(스님 자격증)을 내놓기로 결의한다. ‘승적 포기’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는 의미이다.
• 영화 메인 예고편을 보자.
https://kakaotv.daum.net/v/409183510
처음 계획은 노숙 동안거였다고 한다. 종로와 광화문 일대에서 노숙을 하며 동안거를 보낸다는 의도였다. 물론 이는 모두의 반대에 부딪혔고, 그래서 결정한 것이 바로 천막 노숙이었다. 보통 안거는 특정 사찰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동안거는 세속의 욕망이 집중된 위례 신도시 공사 현장이었다. 불교에서는 세속의 세계와 깨달음의 세계가 다르지 않다는 주장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로또인 부동산 투기 현장이야말로 불도를 닦기에 가장 좋은 장소인지도 모른다.
옷 한 벌과 하루 한 끼의 식사, 그리고 일절 말을 하지 못하는 묵언 수행을 하는 이곳에서 아홉 스님들은 각자 무엇을 얻어갔을까. 이 영화를 통해 기대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그들이 얻어간 것들. 종교인은 자신의 종교를 통해 깨달음을 얻거나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나기를 바라고, 신자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인들을 통해 삶의 희망을 얻거나 일상에서 쉽게 얻지 못하는 평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영화는 아쉬움 가득했다. 스님들의 인터뷰와 동안거 수행 영상으로 이루어지는 이 영화에서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왜 동안거를 시작했을까?’와 ‘동안거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어느 정도의 내용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했다. 조금 더 심층적인 인터뷰와 조금 더 밀착된 영상이 있었다면 좀더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감독의 말처럼 70분의 시간 동안 90일의 동안거를, 그리고 그 스님들의 고뇌와 마음을 모두 담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다만, 영화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동안거가 시작될 때(이를 불교에서는 ‘결제’라 부른다)의 스님과 동안거가 끝났을 때(이를 불교에서는 ‘해제’라 부른다)의 아홉 스님의 모습은 한눈에도 무척 다르게 보였다. ‘수척해졌지만 눈은 초롱초롱’한 그 모습에서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와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정신적 세계가 어떠한지를 우회적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영화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 달래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관객의 입장에서 아홉 스님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었다. ‘왜 스님들은 스님의 길에 접어 들었던가요?’, ‘스님이 되어서 후회한 적은 없었나요?’, ‘혹독한 조건을 어떤 생각을 하며(또는 어떤 화두를 던지며) 버텨냈나요?’, ‘그 이전보다 더 수행의 깊이가 더 나아졌나요?’, 그리고 ‘왜 이 동안거에 참여하게 되었나요?’ 영화가 이 질문들에 대한 조금 더 상세하게 대답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나의 호기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불교의 안거와 관련된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아홉 스님>과 비교해 보면 영화의 감상에도, 불교의 이해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일 년에 단 두 번만 문이 열리는 곳, 비구니 수행도량 ‘백흥암’에서 비구니와 함께한 300일 간의 템플스테이를 기록한 영화이다. 영화 <길 위에서>이다.
https://kakaotv.daum.net/v/49885933
영화, 퍼올리다 - 김바솔
엮인 글: (시사회 리뷰) 문신을 한 신부님_얀 코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