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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시락 Apr 11. 2021

무엇을 두고 '잘 산다'고 말할까?

'어른'이 되어 살아가기


모든 사람들은 ‘잘’ 살고 싶어한다. 잘 살기 위해 인간은 세상에 적응하고, 세상을 자기에 맞게 변형시킨다. 또한 각자의 한계(타고난 성격이나 신체 조건, 가족이나 국가와 같은 주변 환경)를 극복하며 살아가려 노력하고 그에 따른 성공과 실패, 환희와 좌절을 경험한다. 이런 결과들을 종합하여 '잘 산다' 또는 ‘못 산다’ 라고 평가한다. ‘잘 산다’ 할 때의 ‘잘’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가장 좋은 상태’를 의미한다.


이 가장 좋은 상태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어 떵떵거리는 것을 잘 산다 여기고, 어떤 사람은 잘 살기 위해 창작의 고통을 즐기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정말 많은 것들을 이루어도 잘 살았다 생각지 않고, 어떤 사람은 특별히 이루는 것 없이도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들마다 자신의 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그에 대한 만족도 -삶에 대한 태도까지- 역시 다르다.


그런데, 철학에서 ‘잘 산다는 것’은 혼자 떵떵거리며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몇몇 사람들이 도덕을 저버리고 산다 해서 너도 나도 그렇게 산다면 인간 사회가 동물의 세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인간이 인간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은 동물들과 다르게‘상대’를 고려한다는 데에 있다. 비록 모두를 만족시키긴 어렵고 절대적 기준을 세울 수 없다 하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조건들은 있다.


잘 살기 위해
'잘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야


문제는 실제 삶이 철학적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는 데 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생존 앞에서 도덕을 버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내가 살고 보자는 생각이 더 나은 삶을 보장한다면, 그래서 더 잘 살았다면, 그 사람은 그대로 살아갈 것이다. 이렇게 규칙을 져버리며 이익을 얻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만 규칙을 지키며 손해를 보는 것은 또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그래서 사는 건 적응이 안 되고 왜 이래 살아야 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인간이 자기 행동과 삶에 책임을 져야 하고 공동체를 고려하여 자기 의무를 다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말은 실제, 논리적 귀결에 불과할 때가 많다. 현실은 온갖 위선과 배신, 범죄와 전쟁이 난무한다. 철학에서는 더 잘 살기 위해서는 상식선 상에서 생각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으며, 동의할 수 있고 합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가장 이상적 상태를 가정하는 것이기에 현실성은 떨어진다.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에서는 특히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다보니 그것이 좋은 삶의 기준일 때가 많다. 그래서 잘 산다는 것은 돈을 많이 버는 일이기도 하다.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사람들 역시 돈의 가치에 머리를 조아리기도 한다. 이 글을 쓰는 나라고 다를까. 돈을 버는 것도 글을 쓰는 목적 중 하나이다. 돈도 벌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강요할 문제도 아니고, 권유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여기에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철학적으로 잘 사는 건 가능한 일이기나 할까.


잘 살기 위해
스스로 품격을 높이다


그래서 누군가 잘 사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동양에서는 그런 사람을 ‘어른’이라 불러왔다. 이때의 어른은 ‘나이’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품’을 기준으로 한다. 인간이 가진 품격 말이다. 많은 이들이 세상에 어른이 없다고 한탄한다. 서로 못잡아 먹어 으르렁거리는 사회에서 인간의 품격을 지키는 사람들을 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그런 가치들을 더 이상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가 되지 않은 것도 원인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런 사람이 많은 사회여야 공정도 상식도 정의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 공자, 싯다르타, 예수와 같은 사람들을 가리켜 ‘성인’, 즉 ‘성스러운 사람’이라 불러온 것이다. '어른 중의 어른'이니 성스러울 수밖에. 그렇지만 세상엔 그들만큼의 수준은 못 되더라도 조금 괜찮은 어른들이 있어야 한다. 어른이 없다면 스스로 어른이 되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 어른에 기대려 하기보다는 어른이 되어 세상을 이끌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스스로 품격이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보는 것 말이다.


*블로그 바스락(홈피)

https://www.basol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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