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실존'의 의미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는 다르게 '어떻게 이룰 것인가?'와 관련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의 가치관 또는 인생관을 어떻게 실현해 갈 것인가에 관한 방법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난 이렇게 살고 싶어, 하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래,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건데? 하고 묻는 맥락이라 볼 수 있다. 그저 골방에 처박혀서 생각만 하다 죽는 것이 아니라 이제 무언가를 하고, 해내자며 스스로 다그치는 질문이기도 하다.
살다보면 ‘내가 지금까지 대체 누굴 위해 살아왔지?’, ‘내가 여태까지 대체 무얼 위해 살아왔지?’와 같은 질문들과 마주할 때가 있다. 누굴 위해? 무얼 위해? '나'도 모르는데 이를 누가 알까.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살아왔고, '자기'도 모르게 살아왔으니, '자기' 스스로 결단을 내린 적도, 그런 결단을 내릴 만큼의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한 적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런 순간 앞에 섰을 때 인간은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고 그 낯섬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이 질문에는 앞으로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자기 결단'을 요구하고 있기에 반드시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결단이란 중대한 문제에 대한 망설임 없는 결정을 의미한다. 살면서 정말 이것만은 하고, 해내겠다는 다짐이다. 먹고 사는 문제(배는 채워야 하고) 아니면 죽고 못 사는 문제(사랑도 하고 싶고) 아니면 아파 죽는 문제(아프면 나만 손해니)를 제외하면, 인생에서 결단을 내릴 만큼 대단한 일들과 마주한 적이 없었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삶에 필요한 것
자기 결단과 책임
인간이 살아가며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때 인간은 보람을 얻고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곧 철학에서의'실존'이라는 의미와 통한다. ‘실존’이란 쉽게 말해, ‘현실 속에서의 진짜 자기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자기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깨닫거나 자기 스스로 그 의미를 부여하겠다는 의지이자, 다른 사람의 명령이나 결정이 아닌 자기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그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가 바로 실존의 자세이다.
인간에게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심하고 그것을 실현해 내겠다는 결단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므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햄릿의 결단처럼 말이다. 햄릿이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작은 아버지를 처단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자기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자기 뜻대로 살겠다는 의지에 있었다. 물론 그것 없이도 충분히 잘 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순 없지만, 자기 삶을 자기 뜻대로 살아보는 것이 더 멋지지 않은가.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자기다운 모습은 어쩌면 그 자기다운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지불할 수 있는 비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은 뭘 해야 생존하고, 뭘 해야 남부럽지 않게 살고, 뭘 해야 남보다 더 낫게 살 수 있을지, 그러한 질문들을 해왔을지 모른다. 내가 누구인지, 세계란 무엇인지 고민하느니 이 길이 더 빠르고 편하게 사는 지름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철학은 지름길이기보다는 돌아가는길에 가깝다.
나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존재하다
그것이 실존
철학을 한다는 것은, 또 철학적 질문을 한다는 것은, 또 그런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기존의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기에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기존의 세상이 가진 가치와 제도에 아무렇지 않게 적응하거나 편승하려 들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멋진 세상과 멋진 나로 존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존의 세상에 대해 질문하고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이를 고쳐나가고 잘된 점을 지켜나가려고 애쓴다. 물론 애쓰는 만큼 잘 안 되기도 한다.
'실존'이란 '그저 던져준 먹이를 먹는 가축이 아니라, 며칠을 굶더라도 자기의 먹이를 찾아다니는 야생이자, 그저 사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로서 기능하고 활동하는 상태'이다. 비록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도, '내' 스스로 생각하고 '내' 스스로 행동하며 '내' 스스로 애써보고 '내' 스스로 수용하며 '내'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내' 스스로 책임을 지는 일, 그리고 '나'도 하겠다고 '나' 스스로 다짐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 자체로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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