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뽀시락 May 18. 2021

난 무엇을 위해 몰입하는가 (기고)

<법원사람들>에 실린 글

'몰입'을 주제로 청탁이 들어온 글로, 대법원 공보인 <법원사람들>에 실린 글이다.



글쓰기는 하나의 몰입이다. 지금 쓰는 이 글도 마찬가지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 그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리듬에 몸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내가 쓰는 글의 목적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몰입의 기술이 필요한 이유는 이처럼 제대로 집중하고 단시간에 많은 일을 처리하여 생산성을 높이거나 자신이 뜻하지 않은 새로운 창조의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서다. 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 일은 많은 데 비해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나의 몸은 하나에 불과하니 몰입은 더욱 필요하고 중요하다.


경쟁 도구로 전락한 몰입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몰입을 하고 몰입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이 사회가 경쟁을 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는 구조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몰입이 필요해 운동을 하거나 명상을 하고, 자기계발서를 보며 몰입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창조의 기쁨보다는 경쟁의 우위에 서고자 하는 목적 때문이다. 몰입을 위해 몰입을 하는, 그야말로 몰입의 나라에 살고 있다. 경쟁 자체가 아니라 경쟁이 지나치기에 문제이다. 한국 사회를 핀란드나 스웨덴과 같은 사회와 자주 비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편으로 성공의 기준이 지나치게 획일화되었다는 것도 경쟁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많은 사람이 쉬는 동안에도 ‘남들에게 뒤처질까’ 일을 생각하거나 ‘남들이 다 하는’ 레저 스포츠를 즐기거나 ‘남들이 찾는’ 핫 플레이스를 방문해 사진을 찍는다. ‘쟤도 하는데, 나는?’ 실제 쟤도 하는데 나만 안 하는 용기를 갖거나 쟤가 한다고 나도 해야 한다는 믿음을 버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남과의 비교 없이,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가는 것도 ‘괜찮은 삶’이라는 확신을 가지려면 사회적으로 다양한 성공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최근 2030 세대를 중심으로 공정함과 정의에 대한 문제가 거론되는 이유도 한국 사회가 만들어온 잘못된 경쟁의 구조에 있다. 이 세대는 경쟁의 치열함보다는 경쟁의 과정을 문제 삼고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펙을 쌓고 또 쌓아왔는데, 그것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들에게 스펙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렇게 그들을 몰아왔던 이 사회에 대한 불신만이 가득할 것이다. 노력으로 되지 않는 세상이라면 요행을 바랄 수밖에 없다.


몰입의 이유와 목적을 되새기며

대체 누가 이런 세상을 만들었을까?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에게 이러한 사회를 만든 책임을 추궁하지만 기성세대는 기성세대대로 잘못이 없다. 본인들도 그 이전 세대가 만든 사회의 악조건을 극복하고 도전하고 버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경쟁을 하라고 부추기지 않았지만 누구의 잘못이라기엔 특정한 누구를 가리켜 “네가 잘못이야”라고 말할 수 없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씌우려 해도 누구를 특정하여 “네 책임이야” 말할 수가 없다. 더욱이 “우리 모두의 잘못이야”라고 말할 때의 그 ‘우리’ 안에 나는 제외되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 세상에 필요한 것은 ‘난 잘못이 없는데’가 아니라 ‘어쩌면 나에게도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반성과 ‘나라도 그러지 말자’는 다짐인지도 모른다. 신을 부정하고 청년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죽음을 맞이한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죄를 묻는 사람들의 어처구니없는 행동과 불순한 의도를 알았음에도 도망치는 대신 독배를 마시는 것을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바로 그 자신이 아테네라는 국가와 사회 속에서 자라왔고 그곳을 만들어온 장본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를 위해 책임과 의무를 다했듯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에 동참할 자세는 누구에게나 요구된다. 그리고 그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 일 또한 중요하다. 내 몰입이 단지 경쟁의 우위를 지키기 위한 일인지, 다들 그렇게 산다고 나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때론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세상을 바꾸는 힘은 이렇게 작은 반성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음을 기억해야 한다.


난 무엇을 위해 몰입하는가



*블로그 바스락(홈피)

https://www.basolock.com


이전 27화 '행복'이란 이름의 거짓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