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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시락 Oct 29. 2022

'행복'이란 이름의 거짓말

다시 행복에 대해 생각하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행복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 무던히 애쓴다. 돈을 벌려 애쓰고, 감정을 조절하려 애쓰고,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애쓰고, 예기치 않은 일들에 대비하고, 즐겁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으로 누군가를 돌보고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애쓴다. 그래서 누리는 것은? ‘아주 잠깐의 행복’이다. 처음부터 너무나 부정적이고 희망 없는 이야기라며 탓할 수 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자.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행복하기 위해 애쓴 만큼 행복이 오는지. 매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 행복하다. 사람에 따라서는 몇 년에 한 번 행복하기도 하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이자 수학자 중 한 사람이었던 러셀은 지루함을 견딜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생  대부분의 시간은 흥분과 활기가 아닌 지루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행복이라고 다를까? 행복은 지루함 뒤에 오는 아주 잠깐의  흥분이나 활기처럼 인간을 스쳐간다.


이쯤에서 행복의 정의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행복이란 대체 무엇일까. 어떤 기준으로 행복하다 말해야 할까. 행복의 기준에는 돈, 감정, 사람, 직업, 사랑, 성취 등이 있을 것이다. 돈이 없던 사람에게 돈이 생기면 잠시 행복할 수 있다. 어느 날 여행을 떠나 낯선 곳에서 즐거움을 느낄 때 행복하다 말할 수 있다. 정말 좋은 친구를 만나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행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생겨야 행복일까? 그것은 소유가 아닌가?


이런 행복의 문제로 소유를 추구하지 않는, 욕망을 줄이는 방식의 행복도 있다. 나아가 소유의 마음도 욕망의 마음도 모두 사라진  상태를 추구하는 방식도 있다. 동양의 현자들이 자주 말하는 것처럼 모두 버리면, 비우면 행복할 수 있을까. 어떤 이는 이를 위해  평생 수행을 하기도 한다. 행복은 이처럼 무언가를 가져서, 평정을 유지해서, 반대로 무언가를 버리고 비워서, 수행의 순간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행복은 정말 가능할까?
행복은 얼마나 지속될까?


그런데 과연, 행복이 가능할까? 돈이 많은데 아프면 불행하다. 여행을 떠나 한창 들떠 있는데 밥을 먹고 식중독에 걸리면 불행할 수 있다. 정말 좋은 친구를 만난 줄 알고 신뢰하고 있었는데, 어떤 문제로 등을 돌리는 순간 남이 되기도 한다. 더욱이 그런 친구가 있다 한들 늘 행복에 휩싸이는 것은 아니다. 사랑도 우정과 마찬가지이다. 이별해야 하는 순간도 있고 사랑하는 이 때문에 상처 받거나 희생하는 순간도 있다. 어떠한 성취도 보람도 매순간, 영원히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진 않는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행복을 쫓는 것일까. 동화 속에 등장하는 것처럼 행복은 파랑새마냥 내 곁에, 주변에 있는 것일까. 너무나 안타깝지만 내 곁에는 결코 오지 않는 것일까. 그래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행복’이란 무엇인지, 있기나 한 것인지, 기쁨이나 즐거움, 평온이나 무념무상과 같은 것들로 대체할 수는 없는지. 인간이 대체 어느 때부터 행복이란 개념을 만들고 그것을 추구하려 온 인류와 문명이 매달려 살고 있는지를. 행복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전 생애를 소모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선 난 행복을 부정하고자 한다. 행복 자체가 아니라 지나치게  행복을 추구하는 이 상황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복이란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상태인데, 이것은 이룰 수는 있으나 항상 그 상태로 살아가기는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그만큼 애써야 한다. 행복이란 좋은 것이니 누구나 다가가고 싶지만 부자가 소수인 것처럼 그것에 이르는 것은 쉽게 허락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약간의 행복을 기대할 순 있겠지만.


조금 더 나은 일상을 위한 노력이
행복 추구보다 중요할 수 있어


이런 이유로 나에게 주어진 일상을 조금 더 즐겁게 유지하고 나의 삶을 조금 더 의미있게 만들며, 사회적 기준에 비추어 조금 더 나은 것으로 만들겠다는 목표가 행복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지 모른다. 조금 더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기자신이 되어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바라는 행복에 가 있을 수도 있다. 불운과 불행은 언제든 인간을 엄습할 수 있다. 물론 그에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해 나가느냐가 더 중요한 과제일 수 있다.


행복이 파랑새라면 그것을 쫓기보다 그대로 두는 게 낫다. 언제든 날아갈 수 있으므로. 비록 어렵게 찾아왔다 하더라도, 갑자기 날아간다 하더라도, 그냥 그대로 두는 게 나을지 모른다. 어차피 잡을 수 없는 무엇인지도 모르니. 무엇보다 나는 왜 불행한지 묻지 말자. 또 행복해져야 한다고 억지로 웃지 말자. 차라리 화내고 슬퍼하고, 그 다음에 다시 일어나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른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자. 삶에서 무얼 찾고 있었는지, 왜 그것을 찾고 있었는지. 또 어떻게 그것에 다다를지.


행복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 말라.

잠깐이나마 행복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므로.


마음은 행복을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행복이 덧없이 사라지더라도

내 삶이 무의미하진 않으므로.


*블로그 바스락(홈피)

https://www.basol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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