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을 보며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20여년 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했을 때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슬람 율법'이라는 이름 하에 무자비한 탄압과 공포 정치가 자행되고 있다. (물론 모든 무슬림이나 이슬람 국가가 이들과 같이 극단적이진 않다.) 모든 자유가 빼앗긴 곳에서는 인권 또한 보장받을 수 없다. 수백만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발생했지만 갈 곳은 없다. 이러한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보며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해 본다.
민주주의는 완벽하진 않다. 하지만 현재로서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정치 체제는 없다. 최선의 체제이다. 최선이라는 의미 중에 가장 중요한 하나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듯 민주주의에서 국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데 있다. 민중에 의한 통치 또는 시민에 의한 통치가 바로 민주주의의 핵심 이념이다. 물론 정치 권력을 갖고 살아간다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보면 권력이 민중과 시민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말의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민중에 의한 통치는 기본적으로 선거를 통해 구현된다. 물론 현대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민중에 의한 통치라기엔 그저 한 표 하나 던지는 수준에 불과한 것처럼 미미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선거는 안정적이고 평화적인 정권 이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아무리 선거가 진흙탕 싸움이 될지라도 총과 칼을 휘두르진 않는다. 아프가니스탄의 정권 교체는 전쟁과 폭력이다. 멀리 갈 것 없이, 20세기 말까지 한국 사회는 쿠데타에 의해 정권이 바뀌고 군사 쿠데타에 의해 독재가 반복되는 국가였다.
또한 민주주의는 시끄럽다. 바로 언론과 집회 결사 및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생리이자 본질이다. 바꾸어 보면, 민주주의 사회가 조용하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다. 아무렇지 않게 대통령을 욕할 수 있다면 민주주의가 잘 작동한다는 방증이다. 만일 독재나 전체주의 사회라면 대통령을 욕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수많은 시민단체가 우후죽순 생겨나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각자의 이익을 위해 다투고 갈등이 생겨나는 일 또한 민주주의 사회이기에 가능하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는 종교적 이념을 초월해 있다. 물론 종교를 믿는 사람 또는 종교를 지도자들이 갖는 정치적 힘을 부정할 순 없다. 그렇지만 민주주의라는 이념 앞에 종교가 우선하진 않는다. 인간의 이성에, 인간의 기본 상식에 의거해, 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의 국민이라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헌법에 나타난 것처럼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고,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을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차별 받지 아니한다. 다만 이론적으로 그렇다. 그런데 저 헌법 조항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엔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지켜지고 있음을 한번 더 상기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오늘의 일상이 가능한 것도, 이렇게 브런치에 올리겠다고 민주주의에 대한 글을 쓰고 다듬을 수 있는 것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무조건 찬양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이곳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그렇단 의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민주주의는 완벽하지 않고 현실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이고 민주주의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을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것은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인류가 계속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와 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의지를 갖고 개선하려고 시도할 때, 현재의 민주주의를 더 나은 체제로 만들 수 있거나 민주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블로그 바스락(홈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