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확장의 시간 <10>
인류 문명의 역사는 인간의 자기 확장의 시간이라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문명사를 연재 중이다. 아주 띄엄띄엄. 하지만 꾸준하게. (예전에 출간했던 세계사를 좀더 심도있게 확장하여 써 보는 중이다.)
약 2만 년 전이었다. 마지막 빙하기가 도래했다. 빙하기라 해서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남극을 상상해서는 안 된다. 평균 기온 8도를 두고 빙하기라 부른다. 당시에는 낮은 바다는 대개 육지였고, 유럽 및 남미의 절반과 아시아에도 빙하로 뒤덮인 곳이 많았다. 인간에게 빙하기는 새로운 도전이자 새로운 여정을 여는 기회이기도 했다. 빙하기로 수면이 낮아지면서 현재의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관통하는 베링 해협 또한 육지였기(그래서 '베링육교'라 부른다) 때문이다. 인류는 그 길을 따라 북미 대륙으로 이동했다.
대체로 인류가 북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것은 1만 2000년 전후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물론 논란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베링육교를 건넜는지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이다. 너무나 험준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그들의 조상이 처음부터 그곳에 살았다고 믿고 있다. 물론 그 믿음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이야기이므로 그들에게는 진리로 통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새로운 유적들이 발굴되면서 2만 년 또는 3만년 전에 아메리카 대륙에 인류가 정착했을 거란 가설도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언제 이동했고, 어디로 이동했으며, 어떻게 이동했느냐에 대한 수많은 논란을 뒤로 하고(이 부분은 학자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인류의 아메리카 이주는 원시 인류가 지구 전역에 정착하게 된 마지막 여정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인류는 수십만년(오늘날의 이동 속도와 비교해 보자)만에 아메리카에 이를 수 있었다. 인류가 전 세계로 자신의 무대를 넓힌 것은 그만큼 인류가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했고, 자연을 이용하고 활용하여 생산물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은 북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하여 그들만의 문화를 이룩했다. 이를 가리켜 ‘클로비스’라 부르는데, 여기에서 새삼 주목해보고 싶은 것은 그들의 정착 이후 수많은 동물들이 멸종했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는 메머드도 있었다. 메머드의 씨를 말린 것은 생존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어쩌면 놀이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오늘날 사냥이 스포츠로 바뀐 것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메머드라는 거대 동물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은 단지 그것에서 고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넘어, 그것을 제압했다는, 또는 그것을 정복했다는 묘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인류의 대이동은 인류가 자신의 위대한 발자국(문명)을 남기는 서막을 여는 첫 단계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이후에 흔히 ‘4대 문명’이라 부르는 본격적인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메머드가 멸종한 것처럼 인류의 생존이 지구의 다른 생명체가 반길 만한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명은 한편으로 끊임없는 전쟁과 정복의 역사였고, 악랄하기까지한 폭력의 역사이기도 하니까. 나아가 지구 전체의 환경에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오늘날의 세상을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