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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시락 Oct 25. 2022

카더라 통신, 거짓이어도 믿고 싶은 마음

인간의 언어가 갖는  한계와 그 때문에 벌어지는 혼란


20세기에  일련의 철학자들이 인간의 언어가 가진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이를 검증하여 좀 더 엄밀하게 철학을 하고자 했던 시도가  있었다. 논리 실증주의자 또는 언어분석철학자들이라 부르는 러셀이나 프레게, 비트겐슈타인과 같은 철학자들은 그동안의 철학적 성과들을  일일이 검토해 가며 '인간의 언어'로 이룩한 철학이  과연  '믿을만 한 것인지' 검증하려 했고, 그것을 '믿을 만한 언어'인  '수학'(수학도 하나의 언어이므로) 또는 '기호'로  대체하여  새로운 철학을 시도했었다.


고대 동양철학자들이나 현자들은 인간의 언어가 인간의 인식을 방해한다고 믿어 왔다. 달을 가리키며 저 달을 보라 하는데,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며 진리라 믿는 것과 같다. 그래서 '말' 대신 '침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론 인간의 언어 대신 행동의 언어를 선택하기도 했다. 말하기보다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어 경험하게만드는 방법도 있다. 아니면 요리를 해준다거나 함께 걷는 것을 통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것이 백 마디 말보다 더 효과적일 때도 있으니까.   


이와 관련하여 동굴의 우상에 이어 베이컨이 말한 세 번째 우상인 '시장의 우상'에 대해 생각해 보자. '시장의 우상(idola fori)'이란  인간의 언어가 가진 불완전함에 기대어 지식을 형성하는 우상을 가리킨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들은 대체로 정확하고 세심하기  보다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해할 만한 정도의 수준을 반영하기 때문에, 그 뜻이 너무 방만해지고 오용되는 경우가 있다. 학자들 역시  이러한 일상 언어 수준으로 학문을 하다 보니 지식에도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시장의 우상
= 인간의 언어가 가진 불완전함


'시장'이라는  장소는 물건을 사고팔러 오는 곳이니 기본 상식만 통해도 소통이 가능한 공간이다. 또한 시장엔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고,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얘기나 떠들 수 있는 곳이다. 주관적인 믿음을 객관적이라 여겨도, 거짓을 진실인마냥 떠벌린다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흥정이 있는 곳엔 어느 정도의 속임수가 존재하기 마련이니, 조금 과장되고 허황된 이야기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이를  문제 삼지 않고 심지어 그 분위기를 인정하며 즐기기도 한다.


시장에서  '소문'이  잘 나는 이유도 거짓된 사실도 참된 사실로 믿어버리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믿어버리는' 것이다. 남을 이용하기 위해  믿게  만들거나, 자기를 설득하려고 믿고 싶은 대로 믿기도 한다. '그럴 듯 한 게' '그러한 것'이 되고, '그렇다 카던데' 가  또한  '그런 것'으로 쉽게 둔갑한다. 그래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이다. 시장에서는 딱히 문제될 것이 없다. 이처럼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를 학문적으로 엄밀하게 사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쓰기도 한다.


베이컨은 인간의 언어가 인식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를 두 가지로 보았다. 하나는 명칭만 있고 실재하지 않는 것들을 상정하는 것이다. '불의 원소'와 같이 단지 상상한 것들에 지나지 않는데도 거기에 명칭을 부여해 실재하는 것처럼 가정하는 일이다. 물론 만화나 영화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과학적 지식을 탐구하려 했던 베이컨에겐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실재하기는 해도 잘못 추상하거나 불충분하게 정의내린 것들이다. '습한 것'을 두고 다른 물체로 확산하는 성질을 갖는다거나 고정된 형태를 갖지 않는다고 추론하는 예를 들 수 있다. 베이컨은 엄밀하게 규정하거나 정의하지 않는다면 지식을 구축하는 데 있어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외에도 인간의 언어에는 여러 단계의 왜곡과 오류가 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특정한 언어 사용은
특정한 자기 신념의 반영


인간이 가진 언어의 오류는 인간 인식의 오류에 그대로 반영된다.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생각도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일상에서도 자주 깨닫는 사실이지만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각자가 지닌 배경 지식에 따라 서로 다르게 생각하기도 한다. 특정 집단이 특정 언어를 사용한다면 왜 그런 언어를 자주 사용해야 하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특히나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온갖 말을 만들고 이를 통해 국민을 기만하거나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는 경우가 이런 언어의 오류에 해당한다.


베이컨의 지적처럼 없는 것에 명칭을 부여해 있다 여기거나, 잘못된 추론으로 나온 결과를 검증 없이 수용하여 자기 주장의 대전제나 근거로 삼는 것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대개 사람들은 평소 자신이 사용하는 단어를 사용하려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이에 따라 결정되기 마련이다. 이를 개선하려 들지는 않는다. '믿어 의심치 않는 것들'에 대해 더이상 의심하려 하거나 문제 삼지 않는다. 만일 그 믿음에 반하는 사람이 있다면 싸울지언정 잘못된 믿음이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단어들만 사용하다 보면 생각은 상식 선상에 머물게 된다. 상식이 문제가 아니라 '상식적이기만' 한 경우가 문제이다. 상식이 통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더 좋아질 수 있으나 그 상식이 하향  평준화  된다면 지식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이 말을 낳고 그 말이 또 다른 말을 낳듯 생각도 꼬리에 꼬리를 물기 마련이다. 어떤 언어로 그 꼬리를 무느냐에 따라 생각도 달라질 수 있다. 상식의 수준도 함께 올라가야 사회도 발전하기 마련이다.


가끔은 자신의 믿음에 대해 꼼꼼이 분석하고 찬찬히 탐구하며 냉정히 비판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나 세상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라는 의미가 아니다. 자기의 생각과 언어를 조심스럽게 검토해 나가야 더욱 체계적이고 함축적인 생각으로 발전할 수 있기에 그렇다. 연륜 있는 학자의 말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그가 수천 번 수만  번 자기 생각과 언어를 다듬어 왔기 때문이다. 인간의 과학도, 지식도, 문명도 잘못된 믿음을 수없이 고쳐오는 과정 속에 만들어진 것이다.


*블로그 바스락(홈피)

https://www.basol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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